삼성이 ‘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 앞으로 10년에 걸쳐 1조5000억원을 투자한다. 재단은 이 돈으로 물리 화학 생명공학 수학 분야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육성하고, 소재기술 연구 개발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창의 과제 등을 중점 지원할 방침이다. 글로벌 기술경쟁은 갈수록 치열하고, 대외 여건은 극히 불안한 상황이다. 이럴 때 일수록 기초과학과 미래기술 투자 지원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삼성의 이번 결단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민간기업이 국가적 과제를 직접 지원한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반대급부나 조건이 없다는 것이 긍정적이다. 가령 연구 지원 대상자는 과제의 기간과 예산 등을 자율로 결정하고 그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도 개발자가 갖게 되는 구조다. 또 개발된 기술을 상용화할 경우 삼성과 동등한 조건으로 협업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출연금을 회수하는 일 등은 결코 없다고 하니 개발자는 부담 없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이점이다.
특히 기초 과학 분야는 단기 내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긴 안목으로 시간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비로소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이디어 착안에서 노벨상 수상까지 평균 28년이 걸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이번 프로젝트는 이건희 회장의 의중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회장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 도중 가진 간담회에서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고, 투자와 일자리를 최대한 늘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이번 결정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 회장의 의지를 반영한 첫 작품인 셈이다.
그렇다고 ‘박근혜정부 국정철학 맞추기’라는 정치적 시각으로 볼 일은 아니다. 과거처럼 정부의 요청이나, 세간의 눈을 의식해 내놓는 일과성 이벤트와는 사뭇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설립되는 재단은 적어도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으로 뒷받침한다는 게 그렇다. 또 지원하는 대상은 ‘기업’이 아니라 ‘아이디어’로 연구 개발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도 기존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삼성 말고도 주요 대기업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차 LG SK 등이 이른바 ‘액션플랜’ 가동에 본격 착수했다고 한다. 기초 과학 역량은 당면한 국가적 과제이자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이다. 정부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재계의 동참이 반가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