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와 대권 경선서 패한 2009년
당대표였던 朴대통령과 美순방 측근들
“5년뒤엔 전용기로 오자”결의 이뤘지만
정권창출 자부심에 도넘은 권위 추태
“5년 뒤에는 꼭 전용기를 타고 오자.”
시계를 거꾸로 돌려 꼭 5년 전인 2009년.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함께 미국을 방문한 친박(親朴)들은 미국 현지에서 도원결의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경선에서 패해 청와대 입성의 꿈을 이루지 못한 그들은 다음 대선에선 꼭 이겨 전용기를 타고 미국땅을 밟자고 했다.
그리고 5년 뒤 이들은 마침내 꿈을 이뤘다. 박 대통령을 보필하며 청와대에 입성했고, 전용기를 타고 4박6일간의 미국 순방 길에 올랐다. “공군 1호기입니다”라는 기장의 아나운서에 이들의 머리 속은 5년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흘러갔을 게다. ‘이제 드디어 해냈구나’하는 자부심도 다시 밀려 왔을 것이다.
전임 청와대 관계자는 “전용기를 타고 첫 순방 길에 오를 때 정권을 창출해냈다는 자부심이 최고조에 오른다”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동에 갇혀 서류뭉치를 만지작거릴 때는 ‘내가 드디어 청와대에 들어왔구나’ 정도의 체감에 그친다면, 전용기를 타고 외국땅을 밟고 그리고 별도의 보안검색 없이 모터케이드(motorcade)를 통해 미끄러지듯 나갈 때 최고의 자부심을 느낀다는 애기다. 전용기야 말로 정권을 창출한 이들에겐 자부심의 상징이자 카타르시스인 셈이다.
‘성추행 의혹’으로 박 대통령의 첫 미국 순방에 분칠(?)한 윤창중 씨는 브리핑 때마다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입니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윤 씨는 사석에서 “내가 박근혜정부의 첫 대변인이 된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가문의 영광이다”고 했다. 전용기에서 윤 씨도 또 한 번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문제는 ‘권력창출’의 카타르시스가 제대로 제어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윤 씨가 중요한 공무수행 중에도 사흘 내내 술판을 벌이고, 그것도 모자라 성추행을 시도한 것도 ‘내가 누군데, 니들이 나를…’이라는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 윤 씨는 미국 순방 기간 동안 청와대 행정관들이나 인턴들에게 ‘대우’를 요구했다고 한다.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교포사회의 시각은 냉소적이다. 이들의 격앙된 감정은 윤 씨를 타깃으로만 하고 있지도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불썽사나운 꼴을 보인 청와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청와대 전체를 싸잡아 ‘청와대 수준이 고작 이것뿐이 안 됐냐’는 조롱도 많다고 한다. 대통령 순방을 수행하는 이들 중 일부는 “우리가 누군지 아는냐”며 현지 인턴들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증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오고 있다. 심지어 윤 씨와 똑같이 방으로 술을 가져 달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 일로 교포사회가 들끓고 있는 게 응당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 “초기 제어되지 않은 권력창출의 자부심이 화(禍)를 불렀다고 볼 수 있다”며 “청와대도 이참에 말로만 공직자로서의 처신을 강조하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민간기업에서 하는 것처럼 직무ㆍ인성교육 등 청와대 참모진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교육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석희 기자/hanimom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