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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김지연> 살아있는 전설, 사라지는 전설
후배 가수들이 전설의 반열에 오른 선배들의 노래를 재해석하는 KBS의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가 최근 100회를 맞이하면서 ‘들국화’와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살아있는 전설 들국화는 카메라 공포증 때문에 그동안 방송출연을 기피해 온 하동균마저도 카메라 앞에 세웠다. 6년 만이었다. 그는 카메라가 무서워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지만 “들국화처럼 음악하고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텔레비전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들국화와 후배들은 ‘흥분된다’ ‘영광이다’ 등의 코멘트를 주고받으며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가득한 무대를 펼쳤다. 자신들의 음악을 새로운 감수성으로 해석해 다양한 색깔로 펼쳐 보이는 후배들의 무대에 대해 들국화는 너무나 영광이고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자신들에게 자극을 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는 그렇게 관계를 맺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과거를 ‘과거’ 안에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함께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 그 건강한 에너지가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되는 것 같았다.

문득 5월 초 창경궁에서 있었던 ‘고궁에서의 봄꽃 완상’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박상진 교수가 들려주었던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박 교수는 사람들을 이끌고 한 고목 앞에 섰다. 부패한 부분을 제거한 후 빈 공간에 아스콘을 채워 넣는 외과수술을 받은 고목이라고 했다.

오래 된 나무줄기 가운데는 원래 죽은 세포가 모여 있는 곳인지라, 상처가 조금만 생겨도 균이 들어가 쉽게 썩어버린단다. 그러면 속이 비는 것이다. 이를 그냥 방치하면 부패의 속도가 더 빨라질 수도 있고, 쉽게 쓰러져 결국 죽을 수도 있단다. 그래서 그 형태가 빼어나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고목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리기 위해 ‘나무 외과수술’이 행해진다고 했다. 이는 어쩌면 필요악일 수도 있는데, 박교수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것이 과연 나무의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제안했다.

그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마을에는 오래된 보호수가 있어서 그 마을과 희로애락, 역사를 함께해왔다고 했다. 나무란 생물은 오래 살면, 썩기 마련이고, 그렇게 생긴 구멍으로는 동물이며 벌레들이 드나들고, 그 안에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니, 그러다가 밤에는 고목 주변에서 도깨비불이 출몰하기도 하고, 그걸 보면서 사람들은 도깨비 이야기를 비롯한 다양한 민담과 전설들을 상상하고 또 써내려간단다. 그런데 썩어가는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구멍을 모두 막아버리면 전설이 싹터나갈 여지가 차단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이야기였다.

고목이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몸뚱어리’를 좀 더 오래 유지해주는 것과, ‘전설의 화수분’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보호’일까. 나의 경우, 사라지는 전설보다는 살아있는 전설이 더 매혹적이긴 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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