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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안양 지역 교회들의 십자가 소등 운동…절반의 성공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교회가 있음을 알리며 낙심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십자가. 황폐화된 전후 한국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십자가 아래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덩달아 첨탑도 늘어났고 불을 밝히는 십자가가 하나둘씩 생기더니 어느새 밤하늘은 붉은 십자가로 가득 찼다. 어떤이는 십자가 불빛으로 밝혀진 한국의 밤하늘에서 ‘공동묘지’를 연상하기도 했다. 빛 공해를 문제 삼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십자가를 둘러싼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지난해 5월부터 이뤄진 안양기독교연합회와 안양시의 십자가 소등 운동은 주목할 만했다. 연합회는 시와 함께 도시미관과 전력 낭비 개선을 위해 오후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십자가 불빛을 끄는 소등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난 25일 안양시를 찾았다. 예상대로 십자가에 불을 밝히지 않은 곳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첨탑의 십자가를 내리고, 건물 외벽에 십자가를 설치한 곳도 눈에 뛰었다. 밤 11~새벽 4시 소등이 의무가 아닌 자율적인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조정해 동참하는 교회도 생겼다. 해당 교회 관계자는 “교회 인근 아파트 민원을 감안해 십자가 소등 시간을 밤 12~새벽 4시로 조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십자가 소등운동 실무작업에 참여했던 한관희 목사(안양시기독교연합회 부회장)는 “전기절약을 위해서라도 많은 교회들이 참여하고 있다”면서 “올해에도 더 많은 교회가 동참하도록 이 사업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쉬운 곳도 있었다. 주택가에 자리잡은 소형교회일수록 늦은 시간까지 십자가에 불을 밝혔다. 이 교회 교인들은 “십자가를 켜고 안키고는 교회의 자유”라며 “십자가가 도시미관을 헤친다는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안양시 시책과 연합회의 소등운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안양시에 있는 700여개의 교회 중 연합회의 등록된 460개 교회이다. 이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소등 운동 동참의사를 밝히고 있다. 또 대형 첨탑을 철거하고 소형(3.5m)으로 교체하는 교회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노후화된 대형 첨탑 중 48개가 소형첨탑으로 바뀌었으며, 올해 30여개가 정비될 예정이다.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면서, 타인의 믿음을 이해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비신도들을 배려한 안양 지역 교회들의 자발적인 십자가 소등 운동은 기독교의 가치를 더욱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안양의 십자가 소등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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