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큰 남자’시리즈는 40~60대 남성들에게는 우스갯소리로만 여기기 어려운, 현실적 측면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아내가 잔소리 하는데 말을 끊는 남자’, ‘아내가 연속극을 보는데 야구 본다며 채널을 돌리는 남자’, ‘아내가 해준 음식을 맛없다고 타박하는 남자’는 가벼운 경고로 위기를 면할 수 있단다.
그러나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모임에 참석해다 밤 늦게 들어오는 아내에게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어 보는 남자’, ‘간 큰 남자 시리즈가 뭔지도 모르는 남자’에게는 가정 서비스 일부가 유예될 수 있다고 한다. 아내에게 완력을 시위하거나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파는 행위는 구속영장 신청감이다.
3년전 76세 할머니가 80세 남편을 상대로 제기한 이혼 청구소송이 화제가 됐다. 재판부는 “남편은 40년간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으로 가정을 이끌어오다 2003년부터 메모지로만 의사를 표시하는 비인간적인 생활방식 등으로 혼인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고 판시했다. 간이 커도 너무 큰 가부장의 비참한 말년이다.
이런 저런 통계를 들여다보면 남성의 평가 하락은 가히 전생애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11년 조사에서 신랑이 바라는 자녀 성별은 딸 40.7%, 아들 26.1%였고, 임신한 신부는 39.5%, 아들 30.3%였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0년 청소년대상 조사에서 ‘가족이라고 느낄만한 친족의 순위’는 이모와 외삼촌 등 외가 가족이 1,2위를 차지했고 이모부(5위)는 고모부(9위)를 가볍게 따돌렸다. 취업포털 알바몬의 2009년 조사에서 남대생의 63.3%가 ‘처가살이도 좋다’고 응답해, 여대생의 시집살이 수용비율(45.8%)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이건 좀 심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놓아 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초등학생이 쓴 이 시(詩)가 인터넷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다.
구시대적 권위를 버리지 못해 소외를 당하는 것은 어쩔수 없다고 해도, 가족 부양을 위해 일하느라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은 참으로 슬픈 노릇이다. 이는 아빠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엄마의 잘못도 적지 않다.
나흘 밖에 남지 않은 ‘가정의 달’ 5월이 가기전에, 한번이라도 이땅의 아빠들의 노고를 되새겨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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