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이혼등 어릴적 경험 악순환
부모 무관심속 아이들은 병들어가
불행한 가정이 불안한 국가로…
5월의 끝, 가정의 참뜻 되새겼으면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한다. 특히 자식들의 이야기다. 아내에게 물어봐도 그렇단다. 전에는 학교 생활, 진학 문제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은 결혼 문제, 자녀들 직장문제가 주된 이슈가 된다. 그러나 대개가 형식적인 대화에 머문다. 자녀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대화는 어떻게 하는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와 같은 진지한 대화는 거의 없다.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 경우 말고는….
아내는 여자중학교 교사이다. 요즘 아내로부터 이혼 등으로 결손 가정이 많아지는데 이런 경우 아이들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해 안타깝다는 걱정을 많이 듣는다. 우리 부모들은 가정의 내면이 아이들에게 중요함에도 대개 학교, 경제적 지원 등 외형적 문제에만 관심을 가졌지 가정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생각을 않는다.
이혼과 재혼 등으로 인한 가정의 급격한 환경 변화, 부모의 알코올 의존과 폭력 등으로 생기는 열악한 환경, 정상적인 가정이지만 권위적인 분위기나 소통 부재 등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은 많다. 문제의 심각성은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이러한 요인들에 대해 사회에서는 가정 내 문제로 외면하고 부모들은 그 심각성을 모르거나 모른 척하고 있으며 이러는 사이 우리 아이들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보고 들은 것들을 결혼해서 자신의 아내나 아이들에게 대부분 그대로 한다는 것이다. 대물림인 셈이다.
실제 있었던 가정 문제를 드라마로 만든 TV 한 장면. 아주 자상해 보이는 남편은 툭하면 부인을 구타한다. 그리고 다음날 미안하다며 아주 극진히 부인에게 잘해준다. 그 남편은 어릴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타하는 것을 보며 자랐고, 그 아버지 모습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평범한 가정 내 한 사례. “저는 역기능 가정(부정적 가정 패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답습해 아내와 아이들에게 늘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것입니다.”
구타 남편의 70~80%가 어려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고 자랐거나 부모에게 맞으며 자란 아들이라는 통계가 보여 주듯이 가정의 환경은 대물림한다. 유해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나는 부모처럼 하지 않을 거야” 다짐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자신과 부모를 동일시하면서 결혼한 후에는 부모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만 1위가 아니라 이혼율, 이혼증가율 모두 1, 2위를 다툰다. 그리고 가출 청소년이 20만명이나 된다.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사회와 불안한 국가로 악순환하는 것이다. 가출 청소년들이 가정이 싫어 뛰쳐나온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식으로 역할분담을 하면서 자신들만의 가정을 꾸린다. 가정이 그리워 가출한 것이다. 자녀들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이며, 문제 가정과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자녀는 없다는 인식으로 출발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해한 가정환경만이 아니라 좋은 환경도 대물림한다. 부모들의 행위가 자식뿐만 아니라 손자, 증손자까지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면 부모들이 가정 내에서 얼마나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캠페인 글귀가 있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멍든 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라서 그 아버지의 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혼을 하지 않았어도, 집안에 폭력이 없어도, 가족이 공유하는 것은 그들이 사는 지붕뿐인 가정이 많다. 부부 간에는 소원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는 형식적인 가정 말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나는 어떠한 부모이고 무엇을 대물림하고 있는지 한번 평가해 보자.
헤럴드경제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