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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 원호연> 北 외교전략에 KO패 당한 외교부

9명의 탈북 청소년들이 라오스에서 붙잡혀 북한특수요원들에게 신병이 넘겨진 지 24시간 만에 강제 압송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외교는 무기력하다 못해 존재 자체가 실종됐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가 탈북자를 강제 송환할 때마다 인권과 인도주의적 조치를 명분으로 거세게 반발해왔다. 탈북민들이 북송되면 끔찍한 처벌을 받을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강경한 태도에 비해 우리의 주변국과 중국에 대한 외교 역량은 형편없었고, 현지 외교관은 복지부동과 무사안일로 일관했다. 우리 정부는 라오스와 중국 정부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끌려가는 탈북자들의 소재에 대한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한국에 신병을 넘긴다던 라오스 정부가 갑자기 “시간이 필요하다”며 태도를 바꿨을 때, 위기는 시작됐다. 라오스는 탈북자들의 주요한 탈출루트 중 하나다. 북한 측 고위 인사들의 라오스 왕래가 잦아진 사례에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이고 북송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면 탈북자들의 소중한 생명을 사지로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태가 커지자 외교부는 “그동안 탈북자 문제에 협조적이던 라오스가 돌변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북한 요원들이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귀환하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불법 입국자로 잡혀있는 탈북민을 넘겨받는 데만 익숙한 외교부는 새로운 상황에 발만 동동 구르면서, 공항 주변을 서성인 게 전부였다. 그동안 북한 요원들은 중국을 빠르게 통과할 수 있는 단체비자와 여행증명서를 갖춰 놓고 비행기를 통해 신속히 움직였다. 전략적 동반자관계까지 관계가 개선된 중국 정부로부터 어떤 정보도 받지 못했다. 북한과의 한판 외교전에서 KO 패를 당한 꼴이다.

외교부는 재외동포 영사대사를 파견해 라오스 정부에 강력 항의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 점검에 나선다고 한다. 하지만 새롭게 변화한 북한의 전략을 연구하고 대응역량을 키우는 데 게을렀다. 그런 무사안일 때문에 생존과 자유를 찾아서 사선을 넘었던 소중한 생명은 위태롭게 됐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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