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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홍길용> 몰염치 정치와 전력대란
정부 관계자는 원전 불량부품 사태로 전력대란의 우려를 높인데 잠시 머리를 숙였지만, 뒤이어 고개를 들어 사실상 대국민 협박을 했다. 국민들에게 전기절약을 안하면 과징금 등 경제적 불이익으로 응징하겠다는 내용이다. 결국 또 국민 탓이다.



2010년 1월 12일 막 취임 5개월차를 맞은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한다. 이상한파로 전력소비가 급증하면서 국민들에게 에너지절약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전력수급 예측에 실패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과 KB투자증권 등의 자료를 보면 전력예비율이 10%를 밑돈 일수는 2007년 8일, 2008년 12일, 2009년 9일이다. 그런데 최 장관 시절인 2010년에 46일, 2011년 51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129일로 폭증했고, 올 들어서는 이달 29일까지만 벌써 55일이다. 이쯤 되면 최 장관 재임시절 시작된 전력난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최근 드러났듯이 전력대란의 원인은 부실한 원전 탓이 크다. 그런데 최 장관시절 지식경제부의 최대 역점사업이 원전 수출이었다. 문제는 당시 이명박-최경환 원전라인의 관심은 온통 수출을 통한 돈벌이에만 집중됐을 뿐, 원전 안전이나 전력수급 대책은 뒷전이었다는 점이다. ‘앞전’이었다면 2011년 이후, 적어도 2012년부터 전력대란이 이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당시 정부가 떠들썩하게 홍보하던 원전 수출은 이후 숱한 의혹들을 낳으며 그 성과도 퇴색됐다.

29일 새누리당을 찾은 정부 관계자는 원전 불량부품 사태로 전력대란의 우려를 높인데 잠시 머리를 숙였지만, 뒤이어 고개를 들어 사실상 대국민 협박을 했다. 국민들에게 전기절약을 하라면서, 안 하면 과징금 등 경제적 불이익으로 응징하겠다는 내용이다. 결국 또 국민 탓이다. 이젠 정부 잔소리도 지겹다. 심지어 전기요금도 이미 올려 국민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았는가.

살림살이도 어려운데 전기 펑펑 쓸 집이 얼마나 될까. 일찍 찾아온 더위에 매장이라도 시원해야 손님이 올 텐데, 정부 단속을 걱정해야 하는 자영업자의 속을 알기나 할까? 경기가 어려워 너도나도 비용절감하는데 어느 사업주가 전기를 낭비할까.

2013년 5월 15일 최 장관은 집권여당 ‘넘버2’인 원내대표가 됐다. 대통령의 측근이지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요즘 최 원내대표는 원전, 전력대란에는 꿀먹은 벙어리다. 주무부처 장관까지 지냈으면 조목조목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국회 차원의 대책에 앞장설 듯도 한데 그렇지 않다. 하긴 전력대란 책임을 시원하게 인정한 적이 없으니 나서기가 찜찜할 수도 있다. 그래도 자부심은 대단하다. 최근 최 대표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각 언론사별로 ‘마크맨’을 찾았다고 한다. 마크맨이란 ‘대선 주자급’ 정치 거물들을 전담하는 기자들을 말한다. 원내대표 마크맨은 전대미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후보가 되기 전까지 마크맨이 없었다.

고대 중국의 전설적 정치인 관중(管仲)이 쓴 ‘관자(管子)’를 보면 나라를 지탱하는 4개의 밧줄(四維)로 예(禮, 예의), 의(義, 의리), 염(廉, 청렴), 치(恥, 부끄러움을 아는 것)가 있다.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어지고, 두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세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네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지금 집권당 원내수장은 이 가운데 몇이나 지탱하고 있을까.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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