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구조변화·가계부채감축…
지구촌 10년간 ‘경제겨울’ 경고
한국 중장기 마스터플랜 부재
덫 빠지기전 대응전략 갖춰야
지난해 한 지인으로부터 경제 예측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해리 덴트(Harry S. Dent)의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라는 책을 소개받아 읽고서 상당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해리 덴트는 이 책에서 세계 경제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경제 버블이 꺼지면서 향후 10여년 이상 ‘경제의 겨울’에 해당하는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겪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하지만, 그가 근거로 제시한 몇 가지 사실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 비춰 간과하기 어려운 부문이 있다.
해리 덴트 주장의 요지는 향후 인구구조 변화(생산가능인구 감소, 베이비부머 퇴장 등)와 고령화, 대규모 부채 감축 등으로 소비가 줄고 자산 버블이 꺼지면서 장기간 저성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2008년 말부터 지금까지 금융 시스템 붕괴와 불황을 막기 위해 금융 완화책을 구사하고 있지만 실패로 돌아갈 것으로 단언했다. 그는 어떤 경제 정책으로도 인구구조와 소비 변화로 인한 불황의 흐름을 바꿀 수 없고 오히려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아직 인구구조적 추세가 양호하지만 지난해를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전환됐고 세계에서 가장 빨리 진행되는 고령화와 조만간 다가올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러시, 과도한 가계 부채 감축 등으로 향후 상당 기간 소비 감소에 따른 저성장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특히 수출의존도가 GDP(국내총생산)의 50%에 달해 글로벌 경기 둔화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실 인구구조 변화나 고령화 문제는 경제ㆍ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사안임에도, 그동안 국가적 차원에서 중장기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해 추진한 나라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학계나 연구기관 등에서 이따금 인구구조 변화와 고령화 문제를 제기해왔으나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당면한 위기 대응에 주로 치중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중장기 마스터플랜이 정부 내에서 사라진 지도 오래됐다.
정부의 정책 대응의 시야와 호흡이 갈수록 좁고 짧아지면서 단기 대증요법만이 성행하고 있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사태’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근래 들어 국내 주택건설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인구구조와 소비행태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주택 수급의 불일치를 초래한 데 원인이 있다. 필자가 금감원장으로 재직한 지난해 일본의 금융감독청장과의 회담에서 일본의 소위 ‘읽어버린 20년의 경험’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일본도 인구구조 변화와 고령화, 부동산 버블에 선제적이고 구조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주된 요인이 됐다고 한다.
사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보다 기업, 가계, 금융회사, 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에 훨씬 고통스럽고, 한 번 덫에 빠지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개인 입장에서는 일자리는 줄고 소득은 늘지 않는데 고령화로 인한 노후 대비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릴 수밖에 없다. 기업과 금융회사들은 벌써부터 저성장ㆍ저금리와 부실 확대로 매출과 순익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특히 정부 입장에서는 장기 불황으로 복지나 사회안전망 지출 등으로 재정 지출은 급격히 증대하는데 저성장으로 세입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국가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가 한국 경제는 일본과는 다르다는 지적을 하고 있지만, 장기 복합 불황이 시작된 1990년대 일본의 상황과 지금의 한국의 상황이 닮은 점도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헤리 덴트의 주장이 맞다면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고 뒤늦게 외양간을 고치겠다고 나선 아베노믹스의 운명도 순탄치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