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 정벌에 나섰던 한나라 장군 이릉이 투항했다. 사마천(司馬遷)은 중과부적을 내세워 이릉을 변호했다. 무제(武帝)는 분노했다. 사마천은 옥에 갇히고 설상가상 사형선고까지 받는다. 50만전을 내면 사형을 면할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마천에겐 불가능한 일. 사형을 당하지 않으려면 유일한 방법이 궁형(거세형벌)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궁형은 사형보다 치욕스러워 대부분 자결했다. 하지만 사마천은 궁형을 받아 살아남았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마천은 치욕이란 단어를 19번이나 썼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란 말로 궁형을 택한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치욕 속에서도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보다, 태산보다 무거운 결단을 택한 사마천이 있었기에 ‘인간학의 교과서’이자 시대의 고전인 사기(史記)가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jlj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