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가족은 ‘뽕’에 취해 산다. 수시로 먹고 마시다 보니 약간 중독이 된 듯싶다(마약이 아니라 뽕나무와 그 열매를 말하는 것이니 오해 마시길).
뽕나무 가지(상지ㆍ桑枝)와 뿌리(상근ㆍ桑根)는 차를 내어 마시고, 뽕잎은 나물 반찬으로 먹는다. 달콤한 열매(오디) 또한 냉동시켜 놓았다가 즐겨 꺼내 먹는다.
이처럼 뽕나무는 가지와 잎, 뿌리, 열매까지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게 없다. 특히 동쪽으로 뻗은 뿌리의 껍질(상백피ㆍ桑白皮)과 뽕나무겨우살이(상상기생ㆍ桑上寄生), 상황버섯은 예로부터 귀중한 약재로 쓰였다. 정말 ‘효자 나무’다(필자도 몸이 따뜻해지고 속이 편안해지는 효과를 확실하게 체험했다).
행복하게도 필자의 집과 밭 주변에는 이 효자 뽕나무가 제법 많다. 매년 어린나무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이 ‘효자 나무’와 함께 ‘효자 풀’도 있으니 흰 꽃 민들레가 그것이다.
귀농 이듬해인 2011년 봄, 우연히 뽕나무 주변에서 하얀 꽃을 피운 민들레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대부분의 도시인과 마찬가지로 노란 꽃 민들레만 봐온 필자는 이를 변종으로 오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작 노란 꽃 민들레 대부분이 외래종이요, 흰 꽃 민들레는 순수 토종이 아닌가!
흰 꽃 민들레는 왕성하게 번식하는 노란 꽃 외래종과는 달리 토종끼리만 수정하기 때문에 시골에서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매년 밭을 갈고 농약과 비료를 뿌려대는 땅에서는 외래종만 적응할 뿐, 흰 꽃 민들레는 살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 약성은 외래종보다 훨씬 뛰어나 귀한 먹을거리이자 약재로 대접받는다.
이처럼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효자 뽕나무와 흰 꽃 민들레지만 현실에서는 (이를 전문 재배하는 일부 농가를 제외하면) 여전히 찬밥신세다. 농사꾼 대부분은 번식력이 왕성한 뽕나무를 농사 망치는 해로운 존재로 여긴다. 그래서 뿌리째 파헤쳐져 버려지기 일쑤다. 인위적으로 키우기 어려운 토종 민들레 역시 외면당하기는 매한가지다.
대신 그 자리에는 ‘기계영농’ ‘과학영농’ ‘시설영농’이라는 구호 아래 돈 되는 작물이 집중적으로 재배된다. 사실 비료ㆍ농약에 의존하는 공장형 생산이다. 작물의 생명을 다루는 농사이건만 자본의 논리에 얽매여 투기의 대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농사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농사꾼은 물론 심지어 농업전문가조차도 “쓸모없는 뽕나무는 다 베어버리고 땅을 확 뒤집어 돈 되는 작물을 심으라”고 권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럴 생각이 없다.
뽕나무와 토종 민들레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 속에서는 스스로 잘 자라기에 굳이 돈을 들여 투자할 필요가 없다. 또한 친환경 재배이기에 우리 가족의 건강(나중에 판매하게 되면 도시 소비자의 건강까지)을 챙기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생태계 보호에도 일조한다. 비록 돈이 안 된다고 할지라도 이런 ‘효자’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