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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김화균> 그래도 ‘샐러리맨 신화’는 계속돼야 한다
강덕수와 윤석금의 도전사는 ‘실패’라는 낙인을 찍고 한 편으로 치워버리기에는 너무도 아쉽다. 그들의 성공 스토리는 이미 그 자체로 신화이기 때문이다. 실패 스토리까지 고스란히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윤석금, 제3의 강덕수가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재계 인사들은 오너와 월급쟁이는 그 유전자(DNA) 자체가 다르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불굴의 추진력은 오너 DNA이고, 오너의 울타리 안에서 정해진 길을 걸으려는 성향이 월급쟁이 DNA라는 이분법이다. 지난해 헤럴드경제의 연중 기획 시리즈 ‘기업가 정신 그 현장을 찾아서’를 진행하면서 찾아낸 공통점이 바로 그 오너 DNA다. 이병철 삼성 창업자도, 정주영 현대 창업자도 오너 DNA의 화신이다. 과감히 울타리를 부수고 ‘도전’을 선언한 경영인도 있다. 우리는 이들의 성공스토리를 ‘샐러리맨 신화’로 포장하고, 마음 한 편에 ‘나도 언젠가는’이라며 그 꿈을 꼭꼭 숨겨두곤 한다.

강덕수 STX 회장과 윤석금 전 웅진 회장은 당대 ‘샐러리맨 신화’의 대표주자로 꼽혀왔다. 강 회장은 상업고교를 졸업하고 1973년 쌍용양회 입사했다. 결국 28년 만에 자신이 다니던 쌍용중공업을 인수해 오너로 변신했다. 그리고 10년여 만에 STX그룹을 매출 28조원, 재계 순위 13위의 대기업으로 키웠다. 윤 회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세일즈맨 출신이다.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들어 전국을 돌며 사전을 팔았다. 결국 판매왕에 올랐다. 출장 때 식사비와 숙박비를 들고가지 않은 그의 일화는 유명하다. 타지에서 계약금을 받아야만 먹고 잘 수 있도록 스스로 채찍질한 것이다. 그는 1980년 4월 직원 7명, 자본금 7000만원으로 출발한 웅진씽크빅(옛 웅진출판)을 모태로 30여년 만에 웅진그룹을 매출 6조원대 30대 그룹으로 키웠다.

아쉽게도 이 두 샐러리맨 신화는 붕괴에 직면했다. 무리한 사업 확장을 거듭한 웅진그룹은 지난해 가을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2월 회생계획안을 인가받았다. 웅진의 덩치는 이미 왜소할대로 왜소해졌다. STX는 세계 조선ㆍ해운업이 극도의 불황에 빠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강 회장은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핵심 사업인 조선업을 뺀 나머지 회사를 팔기로 했다. 하지만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두 샐러리맨 신화 속 상징 코드는 꿈과 희망, 창의 그리고 불굴의 도전이다. 월급쟁이에게 ‘나도 오너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도전정신을 심어줬다. 그래서 두 신화의 몰락을 보는 샐러리맨의 상실감은 참담함 그 이상이다.

강덕수와 윤석금의 도전사는 ‘실패’라는 낙인을 찍고 한 편으로 치워버리기에는 너무도 아쉽다. 그들이 보여준 도전정신과 성공스토리는 이미 그 자체로 신화이기 때문이다. 실패 스토리까지 고스란히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윤석금, 제3의 강덕수가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STX그룹에는 내로라하는 대기업 출신 인사가 많다. 안전한 길을 버리고 도전과 미래를 찾아 떠난 사람이다. “주변에서는 ‘그러기에 내가 말리지 않았느냐’고 말을 하죠. 하지만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도전을 거듭했던 지난 몇 년이 결코 헛된 세월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다시 도전할 것입니다.” 어쩌면 곧 구조조정 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는 임원 A 씨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던진 말이다. A 씨에게 강덕수 신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강덕수와 윤석금은 좌절을 맛보고 있지만, 그들의 정신만은 신화로 영원히 기록돼야 하는 까닭이다.

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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