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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박승윤> ‘외풍막이’ 금융당국 수장을 보고 싶다
금융감독당국은 공정한 경쟁과 소비자 보호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감시한다는 측면에서 심판관이다. 그러나 한국 금융시장을 글로벌 허브로 육성하는 임무 등을 감안하면 감독 역할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축구대표팀이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이겼지만 예전의 한국 축구로 회귀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문전 처리 미숙, 투박한 긴 패스 등 사라졌던 한국 축구의 약점이 다시 보였다. 한국 축구의 고질병을 치료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이 새삼 떠올랐다. 히딩크 감독은 고질병 치유를 위해 선수들에게 90분을 한결같이 뛸 수 있는 체력과 멀티플레이어 능력을 요구했다. 시험을 통과한 선수들만이 기존의 명성과 상관없이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성적이 부진해 외부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을 고수해 결국 선수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올렸다. 경쟁력을 키운 한국 선수들은 유럽의 빅리그에 앞다퉈 진출했다.

돈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금융시장에서 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은 심판이자 감독이다. 금융감독당국은 공정한 경쟁과 소비자 보호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금융권을 감시하고 잘못을 적발해 제재한다는 측면에서 심판관이다. 그러나 국내 금융회사를 세계 금융시장의 스타플레이어로 키우고, 한국 금융시장을 글로벌 허브로 육성하는 임무 등을 감안하면 감독 역할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금융감독당국이 ‘감독’이 되어야 한다고 굳이 주장하는 이유는 은행, 보험, 증권, 카드사 등을 감시하기에 앞서 이들의 외풍막이 역할을 하는 것이 기본 책무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5대 시중은행으로 불리던 조흥ㆍ상업ㆍ제일ㆍ한일ㆍ서울은행이 모두 인수되거나 합병돼 사라진 주원인은 정치권의 요구에 의해 부실기업에 불법 대출을 해주면서 건전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외환 위기로 호된 아픔을 겪은 후 이 같은 행태는 거의 없어졌으나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인사 개입이다. 전 정부에서는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차지해 ‘4대 천왕’ 소리까지 들었다. 박근혜정부는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실제로는 금융감독당국이 나서 경영 성과가 좋은 민간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내쫓았다. BS금융지주 얘기다. 기자는 해당 금융지주 회장과 일면식이 없지만, 들리는 얘기대로 대선 때 야당 후보를 지지한 것이 퇴출 이유라면, 정권의 옹졸함이 너무 선명하다. 안타까운 것은 금융당국이 나서 ‘행동대장’ 역할을 한 것이다. 차기 회장 선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말은 ‘필요하면 언제든 어느 금융회사든 관여할 수 있다’는 오만함으로 들린다.

금융당국이 건전성 확보와 소비자 보호라는 원칙 외의 다른 잣대를 가지고 금융회사들을 다루면 반대급부로 감독당국의 권위는 추락하고 금융권의 눈은 청와대로 향한다. 정치권력과 가까운 힘센 CEO가 들어서면 금융당국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금융권은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잘못됐다고 직언할 수 있는 금융감독 수장을 보고 싶어 한다. 금감원장을 임기제로 한 취지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는 것이 아닌가. 창조금융은 일관되고 합리적인 룰에 기반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그 안에서는 금융회사들이 자율적으로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창출되는 것이다. 

parks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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