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공기업의 부채 증가 현황과 원인을 적시한 감사원 감사 결과가 참담하다. 감사원은 지난 2011년 말 현재 한국전력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9개 핵심 공기업 부채는 284조원이라고 밝혔다. 엄청난 규모도 놀랍지만 정작 아찔한 것은 빠른 증가 속도다. 2007년 말 기준으로는 이들 공기업 부채는 128조원 정도였다고 하니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4년 동안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공기업의 부채는 결국 국민부담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재정으로 감당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부채가 늘어난 이유다. 한 마디로 윗돌 빼서 아래턱 괴는 식의 눈가림 재정운용을 한 것이다. 정부가 재정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대형 국책사업을 벌여 놓고는 그 비용을 공기업에 떠넘기는 꼼수를 부렸다. 이 기간 29조원이 넘는 부채 순증을 보인 LH공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LH는 보금자리주택 30만가구 건설을 주도하고, 세종시 건설, 혁신도시 사업 등 대규모 국책 토건사업을 진행하면서 부채가 크게 늘었다. 또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 일부 구간 공사를 회사채 발행으로 추진했지만 정부가 아무런 대책을 세워주지 않아 8조원 넘는 빚을 떠안았다.
물가안정 등을 구실로 공공요금을 원가 이하로 적용한 탓도 크다. 한국전력은 산업용 전기 요금을 원가의 85% 수준으로 책정해 공급했다. 가정용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요금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바람에 한전의 재무구조가 악화됐고, 싼 전기 값은 전기 과소비 풍조를 조장했다. 전력대란의 국가 위기가 닥친 것도 따지고 보면 지나치게 싼 전기 값과 무관치 않다.
정부의 공기업 정책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우선 공기업을 통한 무리한 공공사업 추진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공기업 사업은 정부 정책을 반영하게 마련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국가 부실의 화근이 될 수밖에 없다. 공공요금의 합리적 인상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당장 반발이 크겠지만 전기 수도 가스 교통 요금 등을 현실화할 때가 됐다. 부실 공기업 민영화도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지난해부터 국가 신용등급과 별개로 공공기관별 신용도를 따로 매기고 있다. 실제 일부 공기업은 재무건전성 악화로 신용등급이 몇 단계 떨어졌다. 공기업도 신용이 추락하면 도산할 수 있다는 엄중한 현실을 정부와 공기업 모두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