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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 최정호> 국회에 병풍친 공무원들
세종시 국무총리실에는 총리가 없다. 정홍원 총리를 만나려면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는 게 지름길이다.

국회 대정부 질문이 있던 지난 10일,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취임한 지 100여일 동안 온전히 세종시 국무청사에서 근무한 날은 단 6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국무총리가 사무실에만 있는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을 대신해 사건ㆍ사고 현장도 돌봐야 하고, 또 이런저런 행사도 참여하는 게 국무총리의 역할이다.

문제는 총리의 세종시 부재가 이런 본연의 일보다는 ‘서울 높으신 분들’의 호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의원은 “총리 일정 중 단 13%만이 세종시 일정”이라며 “반면 75일을 출장 등을 이유로 서울에서 보냈다”고 밝혔다. 공관 사정도 마찬가지다. 정 총리는 본가 격인 세종시 공관에서 단 열세 밤만 잘 수 있었다. 반면 별채 격인 서울 공관에서는 무려 93일을 보냈다. 청와대 회의, 또 국회 출석하라는 여의도의 부름이 만든 결과다. 정 총리만의 일은 아니다. 세종시에 근무하는 고위 공무원 모두 마찬가지 상황이다. 세종시 근무 공무원 1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2%는 ‘행정 비효율이 늘었다’고, 또 55.1%는 ‘출장 횟수가 늘었다’고 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종시에서 일하고 있는 한 공무원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표현했다. 업무시간 대부분을 기차나 고속도로에서 보내야 하고, 본의 아닌 야근이나 출장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상전 격인 국회의원들도 이 같은 애로를 머리로는 이해한다면서도, 이런저런 회의 때마다 국무총리나 장ㆍ차관, 또 실무자들을 무더기로 호출하는 관행은 결코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국회 사무처가 영상회의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면전에서 직접 따져야 직성이 풀리는 국회의원들이 조그마한 화면에 만족할지는 미지수다.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6월 임시국회 상임위별 회의 계획서에도 장소란에 ‘각 상임위 회의실’로 적혀 있을 뿐이다.

또 다른 공무원은 “9월 정기국회 때는 아예 세종시가 아닌 서울에서 상주해야 할 판”이라며 “국회와 청와대는 보고인원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해줘야 한다”고 푸념했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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