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빌리 브란트는 그 누구보다도 감명 깊게 지켜봤다. 1961년 동독이 쌓기 시작한 장벽이 동독과 서독을 갈라놓기 시작했을 때 베를린 시장이었던 브란트는 이 장벽을 ‘수치의 벽’이라고 불렀다.
서독 총리가 된 브란트는 동구 공산권과 정상화를 위한 ‘동방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했다. 동방정책은 1989년 11월 9일 수치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붕괴로 이어졌다.
독일통일을 보면서 브란트는 “하나의 존재에 속하는 것은 함께 자란다”며 한 뿌리라는 점과 동반성장을 감격어린 어조로 말했다.
동방정책의 데탕트 분위기는 한반도에도 이어져 남북한 역시 1972년에 ‘7ㆍ4공동성명’이라는 역사적인 합의에 이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이 훨씬 넘었지만 남북관계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격(格)을 놓고 남북당국자회담이 무산되더니, 북한이 미국에 고위급회담을 제안했다. 한뿌리라고 하기엔 북한이 너무 멀어 보인다.
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jlj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