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갈등을 빚어온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을 위해 이동식 투명댐(카이네틱 댐)을 설치키로 했다. 카이네틱 댐은 단단하고 투명한 재질의 폴리카보네이트 보호막을 만들어 암각화 주변을 둘러싸는 방식이다. 인근 사연댐의 수위를 조절해 암각화 보존을 주장해온 문화재청과 그럴 경우 식수가 부족하다는 울산시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 절충안인 셈이다.
일분일초가 화급한 암각화 보존대책을 일단 마련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피리를 불거나 춤추는 사람, 다양한 형태의 물고기, 어부와 배, 호랑이 사슴 등 5000년 전 신석시 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걸작이다. 특히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은 인류 최초의 기록으로 추정될 정도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토록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 1년이면 7개월 이상 물속에 잠겨 점차 멸실되고 있다니 애가 탈 노릇이다. 암각화 보존대책은 그야말로 일분일초가 화급한 사안이다. 이미 전체의 4분의 1가량이 멸실된 상태라니 마음이 더 바쁘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암각화를 제대로 보존하는 방법인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 태화강 상류 대곡천 바위 절벽 위에 새겨져 있다. 옛날 선인들이 암각화를 새길 당시처럼 대곡천과 함께 자연스럽게 보존해야 가치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카이네틱 댐은 인공 구조물로 자연스러운 보존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구조물을 설치하면 암각화 주변 경관이 훼손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카이네틱 댐은 어디까지나 임시 방책에 불과하다. 암각화가 물에 씻겨나가는 것을 막는 게 시급한 만큼 우선 이렇게라도 댐을 설치해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영구 보존대책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물론 방법은 물이 빠진 지금의 모습 그대로여야 한다. 카이네틱 방식은 이동과 철거가 용이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반구대 암각화를 지키는 길은 그 아래 건설된 사암댐의 수위를 낮추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울산시민의 식수원 부족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울산시에만 떠넘길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대체 수원지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내년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정치적 접근을 경계한다. 문화유산은 한번 잃으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 국민적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