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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대통령의 펜
각국 대통령이 쓰는 펜은 대통령의 철학과 함께 그 나라의 산업을 보여준다. 그래서 서약이나 주요 법안, 정부 간의 조약 서명에 쓰일 서명용 펜은 매우 세심하게 선택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파커 75’ 마니아였다. 파커75는 전 세계적으로 수억자루가 팔린 대중적인 ‘파커 51’과 차별화해 파커 75주년을 맞아 내놓은 선물용 펜이다. 파커75는 당시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그동안 만년필의 심과 외장이 일체형으로 돼 있던 것을 촉까지 모두 분해가 가능하게 만들어 부품을 바꿀 수 있도록 고안했다. 박 대통령은 이를 ‘최고의 만년필’이라고 칭찬하며 평소 애용하고 쓰던 것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그중 한 사람이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다. ‘서민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류에 결재할 때 300원짜리 ‘모나미 플러스펜’을 사용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민들은 대통령이 나와 같은 펜을 쓰는 걸 보고 더 친근하게 느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선언문에 사인한 펜은 ‘크로스 타운젠트 라카블랙 575 볼펜’이다. 과거 백악관의 공식 펜은 파커였다. 120년 역사를 자랑하던 파커가 영국 뉴웰루버메이드에 인수되면서 크로스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크로스 볼펜은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개혁법안에 사인한 뒤 볼펜 22개를 법안 통과의 주역들에게 나눠주면서 ‘대통령의 펜’으로 불렸다.

세계 역사 현장에서도 펜은 빛났다. 1963년 독일ㆍ프랑스 우호조약에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몽블랑’을 사용해 사인했고, 2000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권력을 넘기면서 자신이 쓰던 이탈리아산 최고 브랜드 ‘몬테그라파 만년필’을 물려줬다. 쓰는 일은 그 자체가 역사이고, 문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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