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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 - 한상완> 밑천없는 R&D의 역설
R&D투자액 OECD 3위 불구
伊·스페인보다 경쟁력 떨어져
‘모방’ 으로 일궈낸 한강의 기적
이젠 기초과학등 ‘밑천’ 키워야


2006년 더타임스(The Times)는 막스플랑크연구소를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연구소로 선정했다. 2등으로는 중국과학원, 3등은 러시아과학원이 선정됐다. 미국은 나사(NASA)를 포함해 5개가 세계 15위 이내에 이름을 올려서 개수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가 각 2개씩 이름을 올렸고, 스페인은 1개지만 6위를 차지해 체면은 세운 셈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우리나라 R&D(연구ㆍ개발) 투자액의 대(對)GDP(국내총생산) 비중은 2010년 기준 3.73%로 OECD 국가 중 3위에 올라와 있고, 위에 거명된 나라 중 어디와 비교해도 앞선다. 그런데 우수 연구소 수에서는 미국, 독일, 중국, 일본은 고사하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도 뒤진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가. R&D의 역설이다.

그렇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보다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과학기술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 개발이 1기가 D램에서 16기가 D램으로 바로 건너뛰지 못하고 4기가 D램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과학기술의 발전도 과거에서부터 켜켜이 쌓이는 것이다. 둘째는 R&D는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가 그 어느 분야보다 크게 적용된다. R&D는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ㆍ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량)’가 누적돼야만 실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투자의 실적이 나오는 데에 최소 수십년 이상이 걸린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1700년대 초반까지 유럽은 연금술에서 갈릴레오, 그리고 뉴턴까지 수백년이 넘는 기간에 과학기술에 대한 탐구가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카트라이트의 방적기라는 원시적인 형태의 기계 발명이 시작됐다. 그리고 150년이 지나선 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그 옛날부터 쌓여온 유럽 전체의 과학기술 투자를 공유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의 과학기술 기초 위에 지난 100여년의 세계 최고 R&D 투자를 지속했다. 우리는 겨우 20년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이나 유럽은 밑천이 있고, 우리는 밑천이 없기 때문이다.

‘빈곤함정(poverty trap)’이라는 것이 있다. 자본이 축적되지 못해 빈곤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지칭한다. 유형 자본이 부족한 것은 그래도 탈출이 쉬운 편이다. 우리도 ‘모방’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R&D 무형 자본의 빈곤함정은 탈출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모방에서 혁신경제로 넘어가야 하는데, 겨우 20년간의 R&D 투자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우선은 기초과학에 대한 R&D를 지속해야 한다. 단기 실적을 내야 하는 기업은 하기 어렵다. 정부의 몫이다. 정부 R&D는 기초과학에 집중돼야 한다. 둘째, R&D를 사다 쓰면 된다. 말하자면 로열티를 주고 원천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로열티가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수백년 동안 투자한 것에 대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비싼 것만도 아니다. 셋째, 우리나라로 유학을 오는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주저앉혀야 한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우리나라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들이 유학의 문호를 넓히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R&D 인력을 수입하자. 원천기술을 사다 쓰기보다는 그것을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을 사오자는 것이다. 미국이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과학자를 수입한 것과, 소련의 붕괴 때 러시아 과학자 유치에 열을 올린 것과 같은 이치다.

창조경제는 혁신경제다. 혁신경제는 모방이 아니라 발명이고, 발명은 기초과학이 기본이다. 대덕연구단지가 벤처의 산실이 된 것처럼, 지금부터라도 기초과학에 체계적이고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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