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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 홍길용 기자> 국민포기 정치권 또 한심한 논쟁…경제위기 서민 곡소리는 안들리나
민생법안 처리 입모았던 여야
盧 NLL회담록으로 소모적 정쟁 돌입
차라리 경제입법으로 다투었으면…


지난 20일 전 세계의 이목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입에 모아졌다. 2009년부터 전 세계에 3조달러라는 천문학적 돈을 뿌려대던 ‘헬리콥터 벤’은 이날 더 이상 돈을 풀지 않겠다고 공표한다. 글로벌 증시는 급락했고, 우리 금융시장도 원화, 채권, 주식이 모두 폭락하는 ‘패닉(panic)’에 빠진다.

이날 허공으로 증발한 시가총액만 수십조원에 달한다. 4년 동안 이어진 유동성 거품 붕괴를 예고하는 서곡일 뿐이었다.

이날 아시아 증시에 이어 유럽과 미국 증시도 다시 대폭락했다. 21일엔 아시아증시가 또 폭락했다. ‘도미노 패닉’이다. 한푼 두푼 모아놓은 3200억달러의 외환 보유액이 순식간에 거덜날지도 모른다.

국정원 국정조사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여야도 따가운 눈총을 의식한 듯, 미봉책이나마 합의를 이룬다. 민생 관련 법안처리에 최선을 다하고, 쟁점인 국정조사도 6월 국회에서 진지하게 논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야가 합의한 지 불과 몇시간 후 새누리당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국정원에 보관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록 일부를 국정원의 협조 아래 열람했다. 지난 대선을 뜨겁게 달궜던 노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이 순식간에 민생을 제치고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부각됐다.

여당 의원들은 “국민들의 알권리”라고 하지만, 누가 봐도 국정원 국정조사 수용을 압박하는 민주당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강하다. 정치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정원도 정쟁의 소용돌이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은 꼴이다. 발췌록이 공공기록물이냐, 대통령 기록물이냐를 둘러싸고 티격태격하고 있고 위법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NLL 포기발언의 진위는 회담록 전문공개로 확인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중 어느 한 쪽은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나라는 둘로 쪼개지고 여야 상생은 물 건너간다. 전문의 자구 하나하나의 해석을 두고 또 다른 정쟁이 파생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까. 그렇지만 정치권의 행태로 추론해보면 전문공개는 불가피해보인다. 갈 데까지 가는 셈이다.

전문공개는 전직 대통령의 회담록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론 툭하면 대통령 관련 기록을 공개하자고 할지 모른다. 끝없이 반복되는 정치권의 주도권 다툼이 ‘외교적 파탄’을 부를 수 있다. 정적을 도살해 정권을 독식하려는 조선시대 사화(士禍)의 부활이 정치인들의 소망인가. 조선 정쟁의 결과는 임진왜란(동인 vs 서인), 병자호란(대북 vs 서인), 그리고 경술국치(외척 vs 친왕파)였다.

지난 대선 때 ‘NLL 논란’이야, ‘국민의 선택’을 앞두고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치자. 노무현정권을 계승한다는 문재인 후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슨 의미인가. 새누리당은 대통합을 앞세워 재집권했고, 민주당도 NLL은 지켜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논란의 당사자인 전직 대통령은 이미 고인이 됐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물가가 오른다. 금리가 오르면 정부는 물론 가계빚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주가 폭락은 가계와 기업의 가치 추락이다. 나라 살림도 이미 거덜나 계속 빚을 더 내야 할 지경이다. 지난 15년간 매번 새 정부 1년차마다 경제위기가 발생했다.

평균 재산 18억원인 국회의원들이야 어떨지 몰라도, 이미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은 금융시장의 혼란이 곧 생계의 위협이고, 경제위기다. 온 나라가 똘똘 뭉쳐 경제난에 대응해도 부족한 상황이다. 차라리 여야가 경제 관련 입법으로 다투는 게 낫다. 여야는 지금 ‘국민 포기’ ‘민생 포기’라는 큰 죄를 짓고 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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