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국 궁에만 쓸수 있던 청기와한국, 독립국임에도 청와대 명명佛엘리제궁 格과는 대조적청기와 걷어내고 명칭도 바꿔야
속국 궁에만 쓸수 있던 청기와한국, 독립국임에도 청와대 명명
佛엘리제궁 格과는 대조적
청기와 걷어내고 명칭도 바꿔야
지난 12일 예정됐던 남북 당국회담이 대표의 격(格) 때문에 무산됐다. 비록 회담은 무산됐지만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원칙적 대응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격이 중요하다는 데에 동의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회담 대표로서 장관과 국장의 정치적 격이 다르듯이 정자로서 팔각정과 구각정이 가지는 문화적 격의 차이는 엄청나다. 옛날에 독립국인 황제국은 구각정을 지을 수 있었으나, 속국인 제후국은 팔각정까지만 지을 수 있었다. 서울 남산과 북악산의 팔각정으로 인해 한국의 문화적 격이 떨어지지만, 대전 구봉산의 구각정이 문화적 체면을 살려주는 이유다.
정자보다 정작 더 문화적 격(格)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국가원수가 거주하며 업무를 보는 공간의 명칭이다. 두 나라 모두 대통령중심제인 한국과 프랑스의 그것을 비교해보면, 한국은 청와대(靑瓦臺)이고, 프랑스는 ‘르 팔레 드 엘리제(Le Palais de l’Elysee 엘리제궁)’이다. 두 나라 모두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帝國)이 아닌 민주국가이지만, 한국 국가원수의 역사적 공간은 대(臺)이고, 프랑스 국가원수의 그것은 궁(宮)이다. 엘리제궁은 프랑스 현대사의 중심적 공간으로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 결정을 발표하므로 ‘정치 뉴스의 발원지’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다. 엘리제궁을 배경으로 한 정치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궁이 가진 문화적 가치가 세계 각국으로 전해진다. 청와대가 엘리제궁이 쏟아내는 만큼의 정치문화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 이전의 명칭은 경무대(景武臺)였다. 경복궁(景福宮)의 ‘경’자와 신무문(神武門)의 ‘무’자를 따서 경무대라 칭했다. 이 터는 원래 조선 왕조시대에 문과시험과 무술대회 같은 국가적인 행사가 열렸던 장소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관저로, 광복 후 미군정기에는 미군정 장관의 관저로, 독립 후에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면서 경무대로 불렀다. 1960년 4ㆍ19혁명에 의해 대통령중심제였던 이승만정부가 물러나고 내각책임제인 장면정부가 들어섰다. 내각책임제하의 국가원수였던 윤보선 대통령이 1960년 12월 30일자로 경무대가 독재정권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정치문화적인 이유를 내세워 청와대로 공식적으로 개명했다.
청와대로 개명한 연유는 “본관 건물에 ‘푸른 기와(靑瓦)’가 있고, 영어로 ‘Blue House’이므로 미국의 대통령관저인 ‘백악관(White House)’과 비견될 수 있다”는 윤보선 대통령의 의견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식적인 영어 명칭은 ‘Blue House’가 아니라 ‘Cheong Wa Dae’이기 때문에 ‘White House’와 같은 격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본관 건물을 지을 때 청기와를 사용한 것은 1897년 10월 12일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간과한 패착이었다. 유학자인 금곡(金谷) 선생에 의하면, 독립된 황제국의 궁전 기와는 황금색을 쓸 수 있었지만 속국인 제후국의 궁전에는 푸른색만 쓸 수 있었고, 다만 왕의 용포만 황금색을 허용했을 뿐이었다고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제국의 궁에는 공히 지붕에 황기와나 외벽에 황금색을 사용했다. 이런 정치문화적 속사정을 알지 못해 속국이 아니고 독립국이면서도 청기와를 덮고 청와대로 명명한 것은 명백한 문화적 오류였다.
문화적 오류를 바로잡는 것도 문화 융성 과업 중 하나다. 박근혜정부가 문화 융성을 4대 국정 기조의 하나로 내건 만큼, 국가원수 집무 공간 명칭의 문화적 격(格)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문화적 격이 바로 서면 문화국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엘리제궁’이 주는 정치문화적 중량감을 보더라도 ‘청와대(靑瓦臺)’에서 청와(靑瓦)를 걷어내고 ‘대(臺)’ 수준의 명칭을 그 이상으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