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사료 가운데 유명한 사진 한 장이 있다. 38선 최전방 참호에서 한 미국인이 미군과 한국군에 둘러싸인 가운데 망원경을 들고 북한 쪽을 관찰하는 모습이다. 이 인물이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보낸 특사 덜레스 국무부 고문이다. 미 대통령 특사가 한국을 방문해 38선을 시찰하는 게 특별할 것 없는, 관례적인 일일 수 있었겠으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6ㆍ25 전쟁이 터졌고 북한은 이를 한껏 이용했다. “미 제국주의와 남한의 미국 앞잡이들이 한국전쟁을 정성들여 계획했다”며, 사진 밑에 설명을 달아 선전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북한의 일관된 ‘북침론’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덜레스는 일본 도쿄로 날아가 맥아더 총사령관을 만난다. 한반도에서는 이미 12시간 전 전쟁이 터졌다. 맥아더는 안절부절못하는 덜레스를 달래듯 말한다. “워싱턴 정부가 방해하지 않으면 나는 한 손을 등 뒤로 묶고 한 손만으로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사흘 후 덜레스는 도쿄에서 다시 미국으로 날아간다. 극동 정세를 보고하던 덜레스는 맥아더를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한마디 덧붙인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나흘 만에 한강 다리가 무너졌다. 6ㆍ25 전쟁 발발과 관련해 1993년 1월, 러시아 기밀문서가 공개돼 북한의 김일성과 박헌영이 소련 스탈린의 승낙 아래 중공의 지원을 입고 계획한 전쟁이었다는 게 밝혀졌지만 ‘남침 유도설’ ‘북침설’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미국이 소련과 북한의 오판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최근 청소년 대상 설문조사에서 ‘6ㆍ25는 북침’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69%가 나왔다. 또한 북한이 침범한 건 알았는데, 용어가 헷갈린다는 응답이 3명에 1명꼴로 나왔다. 말이 생각을 만들어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