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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남북 정상 회의록이 남긴 역사적 교훈
결국 ‘설마’가 ‘현실’로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과연 그랬을까”하는 의문이 실제 상황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말았다. 국가정보원이 24일 전격적으로 공개한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발췌본)은 대다수 국민을 착잡함과 참담함의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왜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지 맞물고 헐뜯는, 대한민국 정치의 저급성과 한계를 새삼 일깨워주는 참으로 보기 드문 계기다.

이른바 ‘2007 정상회담 회의록(10.2~4. 평양)’은 회담 3개월 뒤인 2008년 1월에 ‘생산’된 것으로, 이에 준하다면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과 귀를 의심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논란의 중심이 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진실 여부다. 거듭 밝히는 바이지만 이 문건이 사실이라면 노 전 대통령은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분명 넘었다. 물론 남북 간 서해 접점 지역을 평화수역으로 선포해 긴장완화를 추진하려는 의사를 알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이를 위해 NLL을 포기하겠다는 점을 분명이 했다는 것이 결국 문제다.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NLL문제를 거론하자 노 전 대통령은 대뜸 “저도 관심이 많다”며 “내가 봐도 숨통이 막히는데 그거 남쪽에다 확 해서 해결해 버리면 좋겠는데…”라고 김정일의 평화수역 설정 제안에 선뜻 맞장구쳤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NLL 의제를) 군사회담에 넣어 놓으니까 싸움질만하고…”라는 표현까지 썼다. 고귀한 영토사수와 이 과정에서 희생당한 우리 군에 발길질을 한 셈이다. 더구나 “NLL이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됐다”는 말은 NLL을 사수하자는 국내 여론을 송두리째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북측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은 1999년 북한 군부가 일방적으로 그어 버린 것으로 그대로 하자면 백령도를 포함한 서해 5도가 북한 수역에 들어가고 만다. NLL은 정전협정 직후 유엔군에 의해 설정됐고 북측 역시 이후 발간된 중앙연감을 통해 이것이 곧 남북 간 해상분계선임을 인정했다. 이 선을 드나들며 숱한 도발을 해 왔지만 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서도 수용한 바 있다.

이런 사실을 몰랐다면 이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이면 일본이 독도 인근 해역을 평화수역으로 설정해 공동 소유ㆍ관리하자고 해도 해괴망측하다고 말하지 못할 입장이 되고 만다. 사정이 이런데도 민주당은 이 문건의 수령 자체를 거부했다고 한다. 진위가 의심되는 모양이다. 대신 국정원이 작성한 대화록이 아닌, 대통령 기록물로 등록된 대화록을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된 이상 사실관계를 더 따질 수도 있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번을 계기로 국가 지도자의 자질, 특히 이념적 잣대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남북 간 그 어떤 만남에 있어서도 안달복달은 물론이고 더 이상 굴종은 국민의 이름으로 용납이 안 된다는 점을 깨우쳤다면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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