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는 MBC PD수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PD수첩이 ‘광우병 프로그램’을 보도해 농림수산식품부의 명예가 훼손됐고 PD수첩 제작진은 이를 배상 해야 한다는 것이 소의 요지였다. 결과적으로 이 소송은 각하됐다. “국가는 훼손 당할 명예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당시 법원의 판단이었다. 장관이었던 정운천씨는 소송의 주체를 농식품부에서 ‘개인 정운천’으로 바꿔 다시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지난 2010년 국가정보원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박 상임이사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희망제작소를 돕는 회사들을 겁박해 지원이 끊겼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소의 이유였다. 당시 쟁점은 ‘국가가 훼손 당할 명예를 갖고 있느냐’였다. 법원의 판단은 앞선 농식품부의 명예훼손 사건 때와 같았다. 법원은 “국가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2013년 6월 또 한건의 ‘명예’ 사건이 발생했다. 앞선 사건들과 다른 점은 법원이 아니라 국회라는 점.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 25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발언록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법원이 아닌 국회에서의 발언이니 ‘명예’에 대한 판단도 좀 달라야 하겠다. 이번의 쟁점은 ‘국정원에 지킬 명예’가 과연 남아있느냐다.
국정원은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에 개입해 특정 후보를 낙선 시킬 목적으로 ‘댓글’ 작업을 한 혐의로 원세훈 전직 국정원장이 기소됐다. 조만간 여야 합의로 국정조사도 조만간 실시된다. 음지에서 일해야 할 국정원이 양지에 까발겨지게 된 것은 분명 ‘수치로운’ 일이다. 남 원장이 불법과 합법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지키려 했던 ‘국정원의 명예’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더군다나 국정원의 명예는 중요하고, 유례없는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 향후 외교에 미치는 악영향과 국익, 국민의 자존심, 국론분열은 안중에도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국정원이 왜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듣는지 곰씹어볼 일이다.
홍석희 기자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