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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하루키 현상
하루키의 신작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반응이 뜨겁다. 서점마다 발매와 동시에 수천부씩 판매되며 모처럼 활기가 돌고 있다.

이번 소설은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킨 ‘노르웨이 숲’과 구성과 발상이 유사해 독자들에게는 어떤 향수를 일으킨다. 둘 다 30대 중반의 남자 주인공이 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나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루키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88년 삼진기획이 펴낸 ‘노르웨이 숲’을 통해서다. 이 소설이 한국 독자와 문단에 준 충격은 적지 않았다. 민주화 과정의 혹독한 시절을 보내며 거대 담론에 짓눌려 있던 청춘들이 사랑과 섹스, 와인, 샐러드, 재즈의 하루키식 가벼움에 앓았다. 인기를 방증하듯 ‘노르웨이 숲’은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고, 1989년 문학사상사가 ‘상실의 시대’로 바꿔 달면서 더 달아올랐다. ‘댄스 댄스 댄스’ ‘태엽갑는 새’ ‘언더그라운드’ ‘해변의 카프카’를 거쳐 ‘1Q84’에 이르러선 하루키는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그의 스타일이 식상할 법도 한데 왜 수십년째 하루키일까. 한마디로 하루키는 독자의 감성대를 아는 노련한 장인이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는 섬세한 곳을 그가 일깨울 때 ‘어떻게 이런 것을 알고 있을까’ 감탄하게 만든다.

그의 장인적 기질이 빛나는 곳은 평범한 사물과 풍경 속에서 초월적 공간을 그려내는 데 있다. 그의 소설에는 마치 앨리스가 구멍을 통해 4차원의 시공으로 들어가듯 그런 순간이 온다. 하루키의 또 다른 특별함은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떤 면의 일관성을 지닌다. 그건 깊고 오래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특징들이다. 철저히 계산된 결과이든 아니든 숙련된 장인의 손을 거쳐나온 소설은 또 하나의 현실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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