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게 분명해 보인다. 3일 국회에서 열린 가계부채 정책 청문회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올 3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961조원이다.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평균 11.7% 늘어난 결과다. 그런데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은 평균 7.3%,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가율은 5.7%에 그쳤다. 살림 형편에 비해 빚이 두 배 가까이 더 많다는 의미다. 이런 정도면 정상 상환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실제 우리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개인 금융부채는 163%에 이른다. 소득이 100만원인데 빚은 163만원이란 소리다. 빚갚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정작 걱정되는 것은 빚의 ‘양(量)’이 아니라 ‘질(質)’이다. 정부는 가계부채의 잠재적 부실위험군으로 저소득 다중채무자를 꼽았다. 시한폭탄의 뇌관인 셈이다. 다중채무자는 최소한 3곳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대출자들로 그 가운데 연간 소득이 3000만원 미만인 저소득층 141만명이 문제다. 이들은 신용도가 자꾸 떨어져 은행권보다는 이자가 높은 상호금융, 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권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빚으로 빚을 막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그만큼 부실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나마 상환 능력이 있는 중상층 이상의 가계 부채도 안심할 건 못 된다. 정부는 소득 4~5분위 이상의 고소득 대출자가 전체 가계부채의 70% 넘게 보유하고, 금융권 담보인정비율(LTV)도 50% 수준이라 설령 집값이 더 내려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육박한다고 아우성쳐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자신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안이하기 짝이 없는 판단이다. 이미 은행권 담보대출의 18%가 LTV 법정한도 60%를 초과했다. 무려 54조원 규모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집값이 더 떨어지면 정부가 자신하던 중산층들도 대거 채무 불이행자로 전락이 불가피하다. 실제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이 터지면 이미 늦다. 지금부터라도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저소득 다중채무자 등 취약계층의 상환능력 제고에 대책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정부가 구상 중인 배드뱅크의 구체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비거치식 상환 확대 등 대출구조 개선도 시급하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마련해 상환 능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가계부채 부실이 금융기관으로 전이되면 우리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에 빠진다. 더 촘촘하게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