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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함영훈> 스포츠엔 내 것, 네 것이 없다.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심판이 경기장 안전지대 가운데에서 선수를 소개한뒤 선수들끼리 예를 갖추도록 명하자, 선수들은 “다짐(Tazim)”이라는 말과 함께 허리숙여 인사를 한다. 심판이 “오다가(Ortaga)”라고 하니, 경기준비를 위해 대기선에 섰고, 다시 “크라쉬(Kurash)”라고 선언하자 경기를 시작한다.

빨강색, 파란색 도복을 입은 선수가 상체로 잡기와 몸싸움을 하더니 들배지기를 시도하다 뒤축걸기로 상대를 내동냉이 친다. 주심은 완벽한 기술이라고 보기엔 미흡하다 판단해 ‘욘보시(Yonbosh)’ 득점만 주고, 수세에 몰린 선수가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자, 어른들이 “댁기놈”이라고 아이를 혼내 듯 “닥기(Dikki)”라고 하면서 벌점을 준다. 심판은 이어 “박트(Vaqt)‘라는 구령과 함께 경기종료를 선언한다.

지난 6일까지 인천에서 열린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AIMAG) 크라쉬(Kurash) 경기 풍경이다. ‘경쟁하다’의 뜻을 갖고 있는 3500년된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스포츠이다. 한국의 씨름대회처럼 명절이나 국경일 때 전국장사크라쉬대회가 열린다.

크라쉬는 유도와 비슷하지만, 매트위 앉거나 엎드리고 누워있을 때 구사하는 기술 즉, ‘조르기’,‘누르기’,‘관절꺾기’ 등과 같이 다소 비인간적인 요소를 배제했고, 남의 다리를 잡는 기술 역시 정당하지 않다고 여겨 쓰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최근들어 ‘수비형’으로 변질된 유도와는 달리, 크라쉬는 큰 기술을 많이 쓰고 공격적이어서 박진감이 넘친다.

실크로드의 중간지점으로 고려인들도 30여만명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크라쉬는 이미 중세 무렵 중동과 동아시아에 까지 퍼졌고, 현재 세계연맹에 한국을 비롯해 117개국이 가입돼 있다. 이번 대회에서 8개 세부종목에서 우즈벡이 금메달2개, 일본,베트남,이란,투르크메니스탄,대만,타지키스탄이 1개씩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유도선수 출신 김찬규 등이 동메달 2개를 따냈다.


유도와 비슷해 일본이 강세를 보이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유도의 원조는 크라쉬가 아닌가 싶다.

유도는 1532년 무사 다케우치가 정리한 무술인 ‘요회’가 근원이고, 1882년 가노 지고로가 오늘날과 유사한 체계로 정립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앞서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각희’라는 이름으로 유도와 유사한 종목이 있었고, 이는 각저(씨름), 택견과 함께 우리나라 무술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러시아는 몽골씨름과 유사한 전통적인 힘겨루기 무술과 레슬링, 유도를 한데 합쳐 ‘삼보’를 만들었고, 브라질은 유도에서 그라운드 기술만 남겨 ‘유술’을 개발했다. 인도의 전통스포츠 카바디는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기도 한데, 한국의 놀이문화 ‘오징어 달구지’를 닮았다.

수천년간 숱한 문화가 합궁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체과 지혜가 비슷한 이상 스포츠문화는 돌고돈다. 올림픽 주도국들의 ‘스포츠 패권주의’가 횡행한 요즘, 3500년된 ‘크라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천 AIMAG은 비록 손님은 적었어도, 다양성과 각 국 전통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아시아인의 우정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뜻 깊다. 스포츠엔 내 것도, 네 것도 없는, 모두 우리 것이다. ‘아시아 중심 시대’는 이렇게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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