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늦은 퇴근길, 인도(人道) 한 켠에서 허름한 행색을 한 50대 중반의 여성이 흐느낀다. 휴대폰을 붙잡고대성통곡이다. 어떻게 그렇게 허망하게 가셨냐며, 해 준 것 하나 없다고, 돈없는 게 죄라고 했다. 이 여성의 토로를 몰래 숨어 들으려는 요량은 아니었다. 설움과 격정이 그의 목소리를 높여간 것이다. 도로를 지나던 차량의 전조등에 비친 그의 뺨에 눈물이 연신 흐르고 있었다.
얼마 전 죽마고우의 국제전화를 받았다. 사업에 실패해 다른 나라에서 새출발하겠다며 떠난지 반년 만의 연락이다. 잔뜩 풀죽어 있었다. 유럽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따고 고군분투하다 시쳇말로 회사 말아먹고 타국에서 햄버거 가게 매니저 일을 하니 신세한탄은 도리없다. 생생히 기억한다. 한국은 한 번 실패하면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그가 출국 전 했던 말을.
8월엔 합친다고 했다. 처자식이 그가 있는 곳으로 간다는 뜻이다. 덤덤하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일곱살인 피붙이와 생이별한 설움이 해후를 앞두고 주책없이 꿈틀대는 듯했다. 더 듣고 있다간 눈물마저 전염될 것 같아 무심한 인사 한 마디 던지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다세대주택이 덕지덕지 늘어선 서울의 한 골목길. 습기를 머금어 끈적한 밤공기 사이로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다. 어깨의 들썩임은 그들이 함께 울고 있다는 걸 알렸다. 걸음걸이를 늦출 수도, 속도를 내기도 애매했다. 대화 소리가 들렸다. 여성이 울먹였다. 미안해, 우린 잘 살거야. 남성이 간신히 말했다. 응, 그래라고. 사연 모를 두 청춘을 한참이나 스쳐지나 뒤돌아 봤다. 가로등이 여전히 떨어지지 않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물. 의학적으로는 항생물질이 담겨 있어 각막을 보호한다. 땅을 딛고 사는 척추동물이라면 갖고 있는 이 액체는 인간에겐 더 특별하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흐르는데, 그 이치는 딱히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단다. 환희, 기쁨, 가슴에 맺힌 한, 응어리, 억울함같은 복잡다단한 감정선의 복합체가 눈물이 아닐까 짐작한다. 스포이드로 살짝 집어낸 수돗물 한방울과 비교해도 턱없이 적은 양인 게 한 줄기 눈물이지만 그 무게를 함부로 예단하기 힘든 이유다.
가진 자는 풍요롭겠지만,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눈물의 무게를 애써 외면하며 산다. 상념에 젖어 세상살이를 돌이켜 볼 여유를 갖도록 삶이 놔두질 않아서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듯한 돈을 쫓아 생존을 위해 달릴 뿐이다. 그러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감당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에 휘청인다. 국민행복시대라지만 대다수 국민의 삶이 그렇게 흘러간다.
살아 있는데 상처받지 않는 게 어디 있을까만은 요즘 힘빠지게 하는 소식이 줄지어 날아들고 있다. 갑ㆍ을 관계 논란을 촉발했던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막말ㆍ대리점 밀어내기 파문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본사가 조직적으로 시스템화 해 을을 옥죄어왔던 걸로 결론났다. 영화로 치면 국익을 위해 뛰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여야 할 공무원은 고작 인터넷 댓글 알바를 하는 한심한 작태를 서슴없이 저질렀다.
스타 연예인이라는 자들은 군입대 후 연예병사로 복무하면서 안마시술소에 들락거리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다. 재벌 오너 등은 범죄 혐의로 검찰에 출두한 뒤 구속되면 의례 몸이 아프다며 병보석으로 풀려나는 일을 유행처럼 답습하고 있다. 일반인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감행하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이른바 특권층. 도로변에서, 골목길에서, 타국에서 저 마다의 사연으로 힘들어하는 국민 대다수가 흘리는 눈물의 무게와 의미를 알기나 할런지 안타까울 뿐이다.
홍성원 산업부 차장/ho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