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 대해 고강도 개혁을 주문했다. 8일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국정원의 설립목적을 분명히 하면서, 남북 대치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대북정보 기능 강화와 사이버테러 등에 대응하고 경제안보를 지키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국정원이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 개입 의혹과 2007년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국정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좀 더 일찍 그랬더라면 더 나았을 수도 있겠지만 통치권자로서 무겁게 입을 뗀 이상 국정원은 이를 막중한 개혁 지침으로 삼아 그야말로 환골탈태의 각오로 혁신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개혁 과정은 국정원의 과거 잘못된 행태를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 최우선 개혁대상으로 몰리게 된 연유를 잘 파헤치고 따져보면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과거 박정희정권에서 태동했지만 결국 막강한 실력자를 앞세워 정치적 모략의 진원지를 자처하더니 끝내 권부에 총질을 해댄 것이 국정원의 뚜렷한 과거다. 문민시대를 연 김영삼정부 때 민주화에 편승해 진화를 모색하긴 했지만 무차별 도청이라는 악역을 맡았고, 이를 뒤집겠다며 800명 이상의 전문 인력을 도려낸 김대중정부에서는 이를 계기로 정치권에 줄을 대는 등 되레 부작용만 키운 것이 사실이다.
박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국정원이 역대 정권으로부터 많은 논쟁의 대상이 돼 온 것부터 바로 잡는 것이 개혁의 시작이자 마침표다. 우선 국정원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정치권부터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더 이상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국정원을 요리해 이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법으로 다짐하고, 국정원은 권력의 향배에 목을 빼고 줄을 서느라 본연의 임무를 내팽개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는 명문화된 약속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국정원의 개혁다운 개혁은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어선 절대 안 된다. 국정원을 어떻게 하면 당리당략에 매몰된 국내 정치와 무관하게 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진정 필요한 전문기구로 바꿔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라는 것이다. 총성 없는 경제전쟁 시대에 걸맞게 기술유출 방지 등 경제안보를 중시해야 할 때다. 특히 남북 대치상황에서 대북 문제에 관한 한 최고 권위의 정보기관이 되도록 오히려 각별한 지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개혁을 위해 여야는 물론이고 중립성향의 전문가 위주의 한시적 개혁기구를 두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