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언론인, 정부 공직을 지낸 후 은퇴한 친구가 있다. 자손들도 잘 키웠고 나름대로 대비를 잘한 탓에 즐겁게 노년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 친구가 느닷없이 산타아고 순례길이나 히말라야 트래킹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티아고는 천리 길이고 히말라야는 해발 5000m를 오르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어서 두 곳 모두 노인에는 무리라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들어 온 터여서 그 이유가 궁금했다. 국내에도 걸을 만한 길이 지천인데 왜 그렇게 엄청나고 거창한 계획을 다된 늙은이가 뒤늦게 세웠는지 궁금했다. 힐링(healing)이 필요한 때문이란다.
힐링? 최근 몇 년 동안 유행하는 단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웰빙(well being)이 돌림병처럼 사용되더니 요즈음은 힐링이 대세다. 방송 프로그램에 ‘힐링 캠프’가 등장하는가 하면 어떤 지역은 아예 ‘힐링 ○○’으로 도시 이름을 바꾸었고 음악, 식당, 관광지가 온통 힐링이라는 접두어를 마구 사용하고 있다. 이런 때문인지 어느 스님은 힐링이 지금의 고통을 잊게 하는 ‘진통제’가 아니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힐링은 무엇인가? 영성신학에서 어려운 삶에 대처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얻거나 두려움이나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 주는 치유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다. 상처 받은 자존감을 찾아 주기 위한 종교적인 행위인 셈이다. 이런 것들을 일본이 요가, 명상, 스파, 템플스테이 등 연관 산업으로 발전시켜 힐링을 문화 코드로 상업화시켜 놓았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힐링 관련 산업이 붐을 일으키게 된 언저리를 분석하여 발표했다. 힐링 산업이 급속하게 확산된 것은 직장인의 스트레스 증가, 1인 가구, 고령화에 따른 소외계층의 확산, 사회에 대한 비관적ㆍ냉소적인 태도 형성이 힐링 산업 수요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국민 소득이 2만달러를 넘은 후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경제적으론 다른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에 이르렀다. 단군 이래 제일 풍요롭게 산다는 것이 빈말이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지수가 OECD 36개국 중 27위에 머물고 있고 정신질환자 수나 자살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높은 이상한 상태다. 생산성이나 효율성만을 강조하고 목표 달성이나 개인 성취에만 매몰되어 자기정체성을 찾는 일이나 품격 있는 삶을 등한시했던 부작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외감, 외로움, 애정결핍, 관계단절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힐링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불확실성과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친밀감과 어울림을 갈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런 추세는 젊은이들 사이에 더 심하게 나타난다, 프랑스, 인도, 스리랑카에 있는 종교 성지에 신앙과 상관없이 젊은이들이 몰리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힐링은 이들에게 어려운 삶을 이기려는 절실함이 녹아 있는 여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요즈음 마구잡이로 쓰이고 있는 힐링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일묵 스님은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일을 하기 위한 수행과정이 힐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힐링을 힐링할 때라는 주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