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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반바지
반바지로 일하면 체온을 2도 정도 낮춘다고 하자, 반바지가 범람한다. 그런데 반바지 정책은 표류 중이다.

한국전력은 지난 8일 에너지 절감문화 확산을 선도하고 유연한 조직문화 구현을 위해 반바지 착용을 허용했다. 이달 들어 충북도는 24시간 근무자에게, 안양시는 매주 수요일에 반바지를 입어도 된다고 했다.

때맞춰 ‘5부바지’ ‘냉장고 반바지’ ‘장마용 반바지’ 등이 인기를 끌고, 20년 전 유행했던 ‘치마 반바지’가 다시 주목받는 등 시장도 반응한다.

하지만 한전 등에서 실제 평일 반바지 착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직원들이 서로 눈치만 본다는 것이다.

대검찰청 출입기자시절이던 1998년 어느 휴일, 느닷없이 공안부장의 브리핑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한 방송기자가 집에서 입고 있던 반바지 차림으로 그대로 대검 공안부장실로 뛰어나왔다가 폭소와 함께 비아냥을 들은 적이 있다.


왜 그럴까.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 때문이다. 긴옷 정장에 익숙한 우리 풍토에서 반바지 출근자를 둘러싸고 설왕설래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다리털 논쟁도 붙을테고, 반바지에 어떤 신발을 신을지, 윗옷은 정장을 해야 하는지도 논란거리일 것이다. ‘귀태(貴態)가 안난다’는 얘기도 나올 것이다.

여름에 반바지를 입자는 구상은 합리적이다. 반바지 착용의 합리성과 문화 간 충돌이 있는 가운데 문화를 바꿀 의지가 있다면, 변화는 위로부터 실천해야 한다. 에너지를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장ㆍ차관, 한전 등 공기업 사장, 부사장, 구청장 등이 먼저 입어야 한다. 책임 있는 정책실행자의 모습이다. 반바지 정책이 성공한다면 ‘남성 패션의 빈곤’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얻지 않을까.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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