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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살인의 심리학
왕년의 스타 알랭 들롱의 첫 주연작 ‘태양은 가득히’는 지중해의 낭만적인 풍경과 달리 끔찍한 살인과 사기, 위조로 일관하는 범죄의 종합편 격이다. 가난한 청년 톰은 자신을 업신여기는 부잣집 아들인 친구 필립을 살해한 뒤 요트에 매달아 놓고선 필립의 재산, 애인까지 가로채면서 사기 행각을 이어간다. 필립의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필립 행세를 하는 그를 필립의 친구 프레디가 의심쩍어 하자 그 역시 호텔방에서 장식용 금복주 돌로 살해한다. 거구의 프레디를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난감한 톰은 어둑해지자 시체를 일으켜 세워 입에 담배를 물리고 어깨를 곁부축 하며 끌고 나오다 계단 참에서 청소부와 맞닥뜨린다. 뒷문으로 빠져나온 톰은 또 한 번 사제의 무리와 만나지만 용케 넘어간다. 

르네 끌레망 감독의 영상미학이 뛰어난 이 영화의 명장면 중의 하나를 꼽자면 시체가 있는 호텔방에서 알랭 들롱이 햇살 가득한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환한 대낮, 아이들이 까르르거리며 팔랑팔랑 뛰어다니는 모습은 방안의 어두움과 극적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바야흐로 범죄 추리소설의 계절이지만 현실도 소설 못지않다. 용인 엽기 살인의 충격파에 등짝이 서늘하다. 10대의 비슷한 또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범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람은 왜 살인자가 되는가’를 쓴 은퇴한 독일 살인 전담수사관 요제프 빌플링은 “엽기적이고 잔인한 살인 사건을 접할 때마다 나는 살인 동기가 거창하고 특이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놀라곤 했다”고 말한다. 시신 훼손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다. 범죄의 증거가 사라지면 범죄 사실을 증명할 만한 것이 없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빌플링에 따르면, 범인은 범행을 저지르고 나면 겁에 질려 종종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 인간의 내면은 미궁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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