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는 인구의 60%가 30세 이하인 젊은 나라다. G20 국가 중 연간 3%이상의 경제성장과 인구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드문 나라다. 원유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한 재정적으로도 튼튼하다. 그런데도 플랜트업계와 자동차, 통신 등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한국 중소기업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나라다. 그동안 대규모 인프라사업에서 대기업의 시장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제는 한국의 중소ㆍ벤처에게 기회의 땅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그 면면을 살펴보자.
최근 필자의 방문 중 면담한 경제부, 상공부, 과학기술위원회, 투자청, 경제특구청 등의 고위 관리들은 한국의 벤처 발전에 지대한 관심을 넘어 폭발적인 질문을 쏟아 냈다. 사우디가 이제 국가 성장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폭발적인 인구의 성장의 결과 교육, 의료, 주택 문제에 이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중소ㆍ벤처 창업을 국가 중요 아젠다로 설정해 가고 있다.
이들에게 미국은 모방에 한계가 있는 나라다. 적대적 관계의 이스라엘도 물론 아니다. 그러니 한국은 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귀감이 될 수밖에 없다.
벤처기업협회가 주도한 코스닥 설립과 벤처특별법에 기초한 발전정책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 보기 어려운 성공사례다. 미국과 같은 벤처생태계 조성이 다른 나라에서는 성공한 예가 없다. 미국이란 국가의 독특한 환경과 임계량을 넘어선 규모의 경제로 자기조직화에 성공한 역량을 모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다. 그러기에 일찍이 한국은 독자적인 벤처 발전모델을 정립하고 2000년까지 대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후 2001년 세계적인 IT붕괴의 여파로 국내 벤처정책은 보수로 회귀했다. 한국의 벤처는 이후 추운 겨울을 맞이했지만 이미 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17년만에 전무했던 매출 1000억 벤처가 416개나 나왔다. 대기업에 비해 비교조차 되지 않는 국가투자에 비하면, 또다른 한강의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모든 사실이 사우디 고위관리들에게는 경이롭게 비쳐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벤처생태계는 미국의 일부로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 중동 국가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안이다. 한국과의 협력을 통한 벤처창업 활성화는 어쩌면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의 유일한 돌파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협력의 대상과 대안은 무엇일까. 사우디는 연간 2000억달러가 넘는 국가예산 중 800억달러 가량을 교육과 의료에 투입하고 있다. 원유로 번 돈의 80%를 정부가 사용하면서 유지되는 구조다. 그렇다면 중소ㆍ벤처 육성의 최우선 정책은 자연스럽게 재정지출의 효율화가 돼야 할 것이다.
교육과 의료분야는 우리 벤처에게 약속의 땅이 될 수 있다. 사우디의 중소ㆍ벤처 육성정책은 제조업 강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으나, 현재의 사우디 산업구조로는 제조업 분야 가치창출이 의문시 된다. 연구개발과 연관된 제조보다는 지역문화와 결합한 IT서비스에서 중소ㆍ벤처를 육성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지문화 적응에는 느린 의사결정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은 잊지 말자.
이제 우리 중소ㆍ벤처의 전략이 도출될 순서다. 사우디 정부의 중요 지출분야인 교육과 의료, 관광 및 오락에 IT융합을 위한 합작투자 전략이 그 결론이다. 사우디는 돈이 없어서 투자유치를 하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돈을 대주면서 유치하고 있다. 창업과 일자리 창출이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규제로 인해 한국에서 꽃 피우지 못한 u-헬스케어 분야는 사우디에서 만개해 중동 일대로 확산이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제조업과 서비스가 결합된 사업이 가장 바람직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제도화된 각종 제조업에 대한 혜택과 무궁한 기회인 서비스를 융합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다. 한국의 벤처전략은 제조와 서비스의 결합에서 차별화될 수 있다.
돈이 있는 나라는 기회가 없고 기회가 있는 나라는 돈이 없다. 사우디는 급격한 성장과 산업구조 변화로 기회와 동시에 돈을 가지고 있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이민화 한국디지털병원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ㆍKAIST 초빙교수ㆍ벤처기업협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