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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김지연> 예술은 배경이지 주인공이 아니다
미술계 한 지인과 택시를 타고 종로를 지나는데, 교통체증으로 길 가운데 멈춰 선 틈에 그가 말했다.

“저기 좀 봐. 오윤 작품 앞에 노점상들이 잔뜩 있어. 작품 다 가린다.”

종로4가 우리은행 지점의 테라코타 벽화 앞 풍경을 보고 한 이야기였다. 한때 상업은행이었고 지금은 우리은행으로 이름이 바뀐 건물벽에는 1974년, 작가 오윤ㆍ윤광주ㆍ오경환이 30㎝ 정방형 전돌 1000여장을 붙여 제작한 벽화가 있다.

“하필 왜 저 앞에들 자리를 잡았지? 작품인지 몰라서 그랬겠지? 관리가 너무 허술하네.” 그러더니 곧이어, “아니야. 오윤이 살아 있었다면, 자기 작품 앞에서 사람들이 포장 치고 장사하는 걸 더 좋아했을 거야. 틀림없이.” 오윤은 1986년 41세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듣고 보니 그랬다. 민중미술의 상징인 오윤이라면, 예술가입네 나대지도 않았다 하고, 운동권 지식인 특유의 엘리트주의 같은 것으로 무장한 채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하고, 관념이 아니라 그 스스로 민중이었다는 그 작가라면, 본인의 작품을 최적의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노점상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리 없다.

생각조차 했을 리 없다. 혹여 오윤과 그의 이 작품을 지극히 사랑하는 누군가가 ‘작품’을 위해 노점상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고 주변을 정비하겠다고 나선다면, 그게 더 곤란한 일이다. ‘예술품’ 위하자고 생존을 위협하는 건 뭔가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길이 32m, 높이 3.4m에 달하는 대규모 벽화인데 그 아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사 좀 한다고 해서 작품을 얼마나 가릴까 싶기도 하다.

이 벽이 미술계 사람들 눈에야 ‘작품’으로 보이겠지만, 그 앞을 오가는 이들, 거기 머물며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아 하루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에게야 그저 벽인데 다만 좀 울퉁불퉁 튀어나온 게 다른 벽과 좀 다르다 싶은 정도일지도 모른다.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름, 산, 인체 등의 이미지가 보이는 것도 같지만, 그들이 스치고 등지고 있는 풍경에 구름이 흘러가든, 사람이 누워 있든, 그들의 관심사는 아닐 것 같았다. 혹시, 하루를 보내는 곳의 배경이 따뜻하고 건강한 삶을 꿈꾸었던 한 예술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들의 일상, 우리의 일상은 좀 더 행복해질까?

오가는 사람들과 머무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의 일부가 되는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윤이 원했던 것은 이 작품이 고고하게 보호받는 주인공으로 사는 게 아니라, 우리의 하루를 감싸주는 따뜻한 배경으로 어우러지는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명소를 뒤통수로 찍고 다니는 우리들이건만, 오윤의 작품 앞은 지독하게도 무심히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건물에 걸려 있는 거대한 파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작품 감상을 헤치는 것은 노점상이 아니라 바로 저 요란한 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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