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프리즘>스포츠 창조경제, 시작은 스토리다
장면1. 1993년, 15년 간 몸담았던 삼성전자를 떠날 때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벤처회사를 차렸지만 외환위기가 닥쳐 얼마 안가 정리해야 했다. 다음 사업을 구상하던 그에게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골프와 10년 넘게 한 우물을 판 정보통신을 접목하면 뭔가 재미있는 게 나오지 않을까.’ 적은 돈으로도 실전처럼, 마치 게임을 하듯 스트레스 받지 않고 기분좋게 골프를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바로 스크린골프 열풍을 일으킨 골프존의 김영찬 대표 이야기다. 2000년, 5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골프존은 현재 450여명 직원에 매출액 2700억원(2012년 기준)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장면2.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삼성)이 2003년 외야로 날린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볼이 10년 만에 구단에 돌아왔다. 당시 이 공을 주운 사람에게 1억2000만원을 주고 공을 산 한 기업체 회장이 최근 구단에 기증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달 이승엽이 기록한 352호 최다신기록 홈런볼 소식은 아직 잠잠하다. 공을 주운 이도, 구단 측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 우리 정서상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물건을 드러내놓고 ‘거래’하기도 민망하고, 좀더 현실적으로는 그 공에 어느 정도의 값어치를 매겨야할지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골프존과 이승엽. 얼핏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이 둘은 ‘창조경제’와 맞닿아 있다. 골프존은 올 초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창조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카카오톡, 싸이 등과 함께 언급됐다. 골프와 IT, 문화가 결합된 사업이 창조경제의 기본 개념을 성공적으로 실현한 것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이승엽의 홈런볼 사례는 미국이었다면 전혀 고민할 것도 없는 사안이다. 미국은 스포츠 관련 사업이나 시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각종 스포츠 기념품이나 사인볼, 프로야구 선수카드, 유니폼, 계약서, 손때 묻은 농구공 등 관련 상품과 기념물이 비싼 가격에 경매에 부쳐지고 활발하게 거래된다. 시장은 갈수록 활성화되고 세분화돼서 사인볼이 정식경기에 사용된 건지 연습볼인지, 누가 언제 어디에서 사용한 물품인지 등에 따라 다양한 가격이 매겨진다. 그저 ‘물건’일 뿐인 대상에 스토리와 가치를 입히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나아가 또 하나의 시장과 산업이 형성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체육과학연구원, 한국스포츠산업협회는 지난 16일 ‘창조경제와 스포츠산업의 성장 잠재력’이란 주제로 스포츠산업 진흥 중장기 계획 공청회를 열었다. 김종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과학기술과 게임을 접목한 아이디어가 골프를 만나 연 매출 2조에 달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국내 스포츠산업은 최근 4년간 평균 12%씩 초고속 성장하고 있다“며 융복합을 통한 스포츠의 경제적 가치를 강조했다.

창조경제. 얼핏 어렵고 모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스포츠 창조경제는 멀리 있지 않다. 선수들의 땀, 동시대 사람들의 스토리와 가치를 부여하면, 세상에 없던 산업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 작은 이야기와 가치에 귀기울이는 것, 그것이 스포츠 창조경제의 시작이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