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매미는 맑음’이라는 속담도 있다. 저녁날 매미 울음이 크면 맑은 날이 이어지는 고기압 세력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참 매미가 일찍 운 해는 서리가 빠르다’는 가르침 역시, 장마-무더위-가을 기운의 도래시기 등 계절의 진행이 예년보다 빠르다는 선조들의 경험이 담겼다.
올해 매미의 울음이 늦다. 지루한 장마 때문이다.
앰프에 붙은 스피커에 물이 들어가면 소리가 작아지듯, 매미도 비가 오면, 60데시벨의 우렁한 울음 소리를 낼수 없기 때문이다. 매미의 발음근이 실룩거리며 소리를 만들어 낸 뒤, 엉덩이처럼 생긴 공명실에서 이 울음을 증폭시키는데, 비가 오면 이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지난 6월17일 시작된 장마는 오는 8월2일에나 끝날 것 같다고 기상청은 예보한다. 이미 평균 장마기간(32일)을 넘어 역대 최장기(45일)를 경신할지도 모른다. 비록 이달 24일 오후 오랜만에 해가 뜨자 매미들은 기다렸다는 듯 울어댔지만 사흘을 넘지 못했다.
주지하다시피, 매미 소리 우렁찬 때는 매미 일생 일대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5~11년간 굼벵이 유충으로 지내다 지상에 올라와 우화(羽化:껍질을 벗음)한 뒤 ‘매미로서’ 짧게는 2주, 길게는 4주 밖에 살지 못하는데, 이 때 대(代)를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컷이 울음은 암컷을 유혹하는 과정이다.
어느 수컷 매미 한 마리가 먼저 울더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합창을 하게 되는데, 제 각기 울면 소리의 교란이 생기므로 실시간 피드백을 통해 소리를 동기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카이스트 연구팀이 처음 확인해 세계에 알렸다.
매미 소리 요란한 것은 인간으로 치면, 가장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과 같다. 그들에겐 가장 화려하고 장렬한 시기이다. 사랑을 위해 온 열정을 쏟아 부을 때인 것이다. 그래서 비 갠 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수컷의 울음은 처절하다. 밤낮의 구분이 없다. 매미촌 삼신당 스피커 볼륨은 매년 8월 가장 높다. 교미가 끝나면 암컷은 나무에 알을 깐 뒤 죽고, 얼마 있지 않아 수컷도 따라 죽는다.
긴 장마 였던 만큼, 올 8월 매미소리는 어느해 보다 우렁찰 듯 싶다. 7년간 굼벵이생활을 하는 ‘맴맴’ 참매미, ‘쓰름쓰름’하는 애매미, ‘치이치이’ 털매미, ‘쓰르람쓰르람’하는 저녁매미, ‘지이지이’ 우는 깽깽매미들의 야외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전 생애의 99%를 굼벵이로 은둔생활을 하다가, 불과 2~4주간 지상에서 살다 죽는 매미의 몸 구조는 ‘8월의 울음’을 위한 것으로 설계됐고, 그 울음은 지고지순한 사랑의 시그널이다.
행여 매미 소리 시끄럽다고 나무에 돌을 던지지 말라. 같은 생명체로서 도리가 아니다. 차라리 매미소리 들으면서 올 여름과 가을 일기는 어떨지 예측해보거나, ‘나는 매미 같은 정열적인 사랑을 해보았나’ 돌이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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