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대표적 농산물이 있으니 바로 옥수수와 감자다. 강원도 홍천 산골에 살고 있는 필자 역시 매년 옥수수와 감자, 그리고 고구마는 꼭 심는다. 특히 유명한 ‘홍천 찰옥수수’를 비교적 많이 재배한다.
옥수수는 4월 상순부터 6월 말까지 순차적으로 심으면 7월 하순부터 추석 전후까지 계속 수확이 가능하다. 수확 후 바로 삶거나 쪄서 먹고, 또한 삶아서 냉동하거나 낱알로 저장해 두면 두고두고 오래 먹을 수 있다.
옥수수는 한 알을 심으면 대개 한 자루를 수확한다. 올해의 경우 한 자루에서 대략 400∼500개의 알갱이가 나오니, 무려 400∼500배를 거두는 셈이다. 그래서 옥수수는 쌀 못지않은 귀중한 식량작물로 대접받는다.
이 옥수수를 재배하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그건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열매를 맺기 위해 바로 서고자 하는 옥수수의 꼿꼿함, 즉 직립성이다. 옥수수는 비바람이 부는 장마철에 곧잘 쓰러지곤 한다. 심한 경우 줄기 밑동이 휘어진 채로 자신의 몸체를 곧추 세우고자 무진장 애를 쓴다.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생명의 경이, 성장과정에서 보여주는 바로 서고자 하는 인내력, 이후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겉껍질로 겹겹이 감싸고는 비와 해충을 이겨내는 결실과정까지 옥수수는 많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작물 재배의 묘미는 수확의 기쁨이다. 온갖 정성을 쏟아 기른 옥수수가 풍성한 열매를 안겨줄 때의 성취감이란 도시에서 근로를 통해 대가(돈)를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재배ㆍ결실 과정에서의 그 생명 에너지까지 고스란히 내 것이 된다.
그런데 수확해 놓은 우리 집 옥수수는 뭔가 좀 다르다. 일단 시중 옥수수에 비해 그 열매가 훨씬 작고 볼품이 없다. 당연히 알갱이가 잘고 더러 벌레 먹은 것도 있다. 농약과 비료를 전혀 주지 않고 친환경 재배를 고집한 결과다.
이렇게 작고 못생긴 ‘미니 옥수수’지만 주변에선 인기 짱이다. 이런 저런 기회로 한번 먹어 본 이들은 “정말 맛있다”를 연발한다.
심지어 돈을 줄 테니 조금만 팔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조금씩 나눔은 할지언정 팔지는 않는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옛말처럼 내가 직접 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을 이웃, 친인척, 지인들과 나누면서 얻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주고받는 계산된 선물과는 그 동기(정성)와 의미(베품)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원생활을 하면 비록 돈(현금)은 없지만, 이렇듯 애써 키운 농산물이 수백 배의 수확으로 보답을 하니 농사철 전원의 곳간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직접 먹어 배부르고, 또한 이를 이웃과 나누는 넉넉함까지 함께 추수하는 것이다. 전원의 곳간을 열어 나눔으로써 마음의 곳간은 여유로움과 넉넉함으로 풍성하게 채워진다. ‘미니 옥수수’의 생산과 나눔이 새로 맺게 해 주는 복된 열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