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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 이종덕> 한 · 중문화교류 새롭게 도약할 때다
닻 올린 ‘韓·中 인문교류공동위’
대중문화 동반견인·성장 기회로
양국 미래인재 육성에도 큰역할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격상 기대


1992년 8월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하기 전, 필자가 서울예술단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필자는 예술단 단원 40명을 데리고 중국 연변자치주 연길시 주경기장에서 열린 연변조선족자치주 설립 40주년 축하공연에 참가했다. 한국뿐 아니라 북한의 평양예술단과 중국의 연변예술단 등이 참여한 대규모 행사로서, 연길시는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축하공연은 길림성 장춘시에 있는 길림성빈관으로도 이어졌다. 공연 당일, 한국과 중국이 역사적인 수교를 했다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적대적 관계인 두 나라가 평화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시점에, 중국 현지에 체류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필자는 저녁에 있을 장춘 공연을 한ㆍ중 외교의 디딤돌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한ㆍ중 수교를 축하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급히 제작해 공연장에 걸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관객뿐만 아니라 모든 공연 관계자들의 얼굴에 짙은 감동과 환희가 드리워져 있었다. 절묘한 타이밍과 민첩한 대응 속에 한ㆍ중 수교를 기념하는 첫 번째 축하공연은 그렇게 탄생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27일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양국 정상들은 ‘한ㆍ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채택해 양국 관계의 발전 방향과 세부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한ㆍ중 인문교류공동위원회’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교류는 양국 수교 이후 20년 동안 K-팝(Pop)과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양국의 대중문화산업을 서로가 견인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한ㆍ중 문화교류를 한 단계 도약시킬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ㆍ중 인문교류공동위원회’라는 너른 마당을 통해 문화적 동질감이 강한 양국이 자국의 문학과 역사, 철학 등의 인문학을 활짝 펼치고 나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화려한 대중문화도 중요하지만 삶의 깊이와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수준 높은 문화까지 서로가 확인하고 존중하며 공감대를 넓혀감으로써, 한국과 중국은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는 지지대를 밟을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양국의 청소년들을 협력과 개방의 창조적인 미래 인재로 육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동북공정 등 역사문제로 인한 갈등과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양국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꽃피울 때 양국 국민들의 정서적 친밀감은 더욱 끈끈해질 것이다.

때마침 필자가 이사장으로 있는 KBS교향악단이 중국의 국립 중국국가교향악단과 지난달 20일 베이징에 있는 국가대극원 음악홀과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등 양국 수도를 오가며 합동공연을 펼쳐, 새로운 문화교류의 물꼬를 텄다. 공연에선 특히 마침 아시아나 여객기 착륙사고로 희생된 중국 여고생 3명을 애도하는 묵념과 함께 양국의 국가 연주가 식전에 울려퍼졌다. 객석에선 외교부 인사를 비롯해 한국 관객들이 중국 국민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공연장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서울 공연에선 양국 문화교류의 밝은 앞날을 펼쳐 보이듯, 밝고 웅장한 교향곡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 작품 40번이 연주됐다. 연주가 끝나자 양국 교향악단의 지휘자인 곽승과 리신차오를 비롯한 연주자 110명 모두가 서로 얼싸안으며 진정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줘 객석을 뭉클하게 했다. 양국 문화교류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성공적으로 진입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정부도 문화융성위원회를 본격적으로 출범시키며 문화발전에 대한 밑그림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ㆍ중 문화교류의 성숙한 전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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