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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이해준> 하루키가 ‘색채가 없는…’에서 놓친 것들
하루키가 작품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처가 없는 사람은없다. ‘색채가 없는…’에서는 그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다. 자신만이 피해자라는 연민에 빠진 쓰쿠루를 위로하는 수준에서 벗
어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느닷없이 부정당하고, 영문도 모른 채 홀로 밤바다 속에 내팽개쳐지는 공포, 아마 그 때문에 나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었을 거야. 다른 사람과 나 사이에 늘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었지.”

지난달 1일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 1위를 질주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주인공 쓰쿠루가 3명의 친구 중 마지막으로 핀란드 헬싱키에 사는 구로를 만나 한 말이다. 이 말에 이 작품의 핵심이 담겨 있다. 작품은 16년 전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로부터 이유도 모른 채 절교 선언을 당해 큰 충격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쓰쿠루가 친구들을 ‘순례’하면서 절교의 이유를 확인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논란도 뜨겁다. 감성적인 문체와 뛰어난 흡입력으로 하루키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는 찬사에서부터 현실인식이 결여된 3류 대중소설이라는 비판까지 스펙트럼도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논의가 작품의 형식을 중심으로 이뤄질 뿐, 핵심 내용에 대한 하루키의 접근 방식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색채가 없는…’은 한 인간의 상처 치유과정을 다루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하루키는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남기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하루키가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관계의 방식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색깔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깊은 자기연민과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쓰쿠루는, 순례를 마칠 때까지도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는 친구들이 갖고 있던 상처나 아픔을 깨닫지 못했다. 16년의 암흑시절에 잠시 사귀었던 친구 하이다에게 그가 주었을 수도 있는 상처에 대해서도 인식하지 못한다. 16년 만에 만난 친구 아오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텅 빈 존재가 아냐.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중략) 우리한테는 역시 너라는 존재가 필요했다고.” 이 말에 ‘깜짝 놀란’ 쓰쿠루는 자기연민에 대한 위안을 얻고 발길을 돌릴 뿐이었다.

하루키가 작품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완전한 가해자도, 완전한 피해자도 없으며, 가해와 피해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관계다. 자신에게 불완전한 관계는 타자에게도 불완전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색채가 없는…’에서는 그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다. 자신만이 피해자라는 연민에 빠진 쓰쿠루를 위로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치열한 사회의식이 결여된 작품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하루키가 이 작품에서 보여준, 고통스럽지만 상처를 확인하고 넘어서는 과정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위안도 준다. 그럼에도 이렇듯 작품에서 놓친 것들을 감안해 읽는 것이 더 깊은 독해법이 될 것 같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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