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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미국의 속셈 드러낸 오바마의 애플 포옹
오바마 행정부가 애플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에 대해 수입을 금지한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미국의 경쟁여건에 미칠 영향과 미국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 등 다양한 정책적 고려라는 게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밝힌 그 이유다. 문제의 표준특허에 대해서는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이른바 프랜드(FRAND) 원칙을 앞세우기도 했다. 우리로선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만 셈이다.

미 정부가 정책적 고려를 강조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자국이기주의라는 정치적 판단을 우선했다는 지적이다. 프랜드 원칙을 유난스럽게 강조한 것도 필수표준특허(SEP) 보유를 강점으로 하는 삼성에 대한 추가 특허권 남용을 차단하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자유무역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주창해 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이기에 충격과 함께 실망감 또한 클 수밖에 없다.

ITC는 미 대통령 직속의 준사법적 독립기관으로 미 대통령이 임명한 6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과거 삼성과 애플 간 특허분쟁에서 꼬박꼬박 애플의 손을 들어줬던 ITC였다. 그런 기관이 미국 밖에서 만든 애플의 구형 제품이 삼성전자가 보유한 표준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 바로 6월의 일이다. 이런저런 국내 사정을 감안했겠지만 결국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미국 주요 언론도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선택이 예상밖의 일이며 상식을 뒤집었다고 할 정도라면 이번 오바마의 선택은 분명 역주행으로 간주할 만하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미국의 미국답지 않은 행보다.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그 어느 국가보다도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조해 왔고 이를 국가적 명예와 전통으로 삼다시피해 왔지 않았나. 이번 결정을 하면서 미국은 특허를 가진 기업보다는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어느 정도 이해되나 이것으로 자국기업 보호라는 비난과 질타를 덮겠다면 큰 오산이다.

기업 간 특허분쟁에 미 행정부가 이렇게 나선 것은 26년 만의 일이다. 문제는 향후 미 행정부의 자세다.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ITC의 예비판정에 대한 판결이 9일로 예정돼 있다. 이번에 삼성이 불리해도 똑같은 입장을 견지할지, 아니면 또 애플을 끌어안음으로써 자유무역 기조를 깡그리 무시하려들지 국제사회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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