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타협의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다. 영수회담이니 3자회담이니 5자회담이니 형식을 놓고 핑퐁하는 정치권이다. 이해와 양보, 그리고 배려는 실종됐고 대신 몰이해와 아집, 그리고 배타가 판친다. 정치적 불쾌지수는 이제 불감당의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회담 형식 논란은 우리 정치의 수준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회담을 먼저 제의한 민주당은 오락가락 대화의지를 의심케 한다. 김한길 대표는 대통령과의 1 대 1 영수회담을 제의하고 형식과 의제에 구애받지 않고 의전도 사양하겠다고 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자신을 포함한 3자회담을 제안해 오자 수용할 듯 자세를 취했었다. 그러던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6일 5자회담 역제의에 미적대더니 그 사이 민주당은 당 대표가 아닌 원내대표 명의로 사실상 반대의사를 내놨다.
민주당은 자기모순에 빠진 듯하다.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독대든 다자든 회담에 적극 나서 자기 목소리를 충분히 전달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것이 옳다. 내 뜻대로 안 되면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태도는 가장 우선 배격해야 할 정치적 독선 아닌가. 이번 장외 정치도 강경파에 주류가 떼밀린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될 만하다. 민주당이 집착하는 여야영수회담도 문제다. 과거 계보정치가 등등하고,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겸하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반미주적 산물이다. 대통령이 여당을 대표하지 않을 뿐더러 여당에도 엄연한 대표가 존재한다. 청와대를 향해 과거 회귀를 따지는 민주당이 오히려 구태의 손길을 내민다면 시대흐름은 물론 명색과도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일이다.
새누리당 역시 집권여당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국정원 개혁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꺾고 비틀고 피하려 들다 야당의 장내 이탈까지 초래했고 대화기피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청와대도 너무 경직됐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정치권을 싸잡아 일일이 잘못을 적시하고 변화를 강요하다시피 했다. 백번 옳지만 경색 정국을 풀자면 분위기 조성이 우선 중요하다.
정치가 난마처럼 얽힌 것도, 출구를 찾겠다며 대화 운운한 것도, 그러면서 내 주장이 옳다며 상대를 압박한 것도, 이로써 정국을 다시 더 꼬이게 한 것도 모두 정치권 스스로 펼친 추한 모습이다. 저마다 국민과 민생안정을 위한다면서 서로를 향해 변화를 삿대질하는 언행불일치의 꼴을 얼마나 더 참아내야 할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지금이 고작 대화의 형식을 따질 때인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