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 대통령 체제에서 임기 내 새로운 사업을 벌여 성과를 거두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 정부에서 시작한 일이라도 제대로 수확할 수 있게 하고, 다음 정부까지 이어질 사업을 추진해야 지속가능한 정책, 성공하는 정부가 만들어진다.
지난 3월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초 ‘신앙의 빛’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회칙을 발표했다. 회칙은 교황이 전 세계 신자들에게 보내는 사목교서다. 신임 대통령의 첫 국정방향이라 할 수 있다. 고통받는 이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신앙의 역할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만큼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문서가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과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공동작품이라는 점이다. 베네딕토 16세가 3장까지 작성하다 물러난 후 현 교황이 겸손과 희망에 대한 자신의 평소 신념을 담은 한 장을 첨가해 총 4장 82쪽 분량의 회칙을 완성해 반포했다.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보수적인 신학자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다. 두 교황의 신앙에 대한 신념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새 교황은 전임자가 만들던 회칙을 마무리해 첫 사목지침으로 내놓았다.
세종대왕이 1418년 8월 11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조선의 4대 임금으로 즉위하면서 반포한 교서에도 계승 발전의 의지가 담겨 있다. 세종은 즉위 교서에서 “일체의 제도는 태조와 부왕께서 이루어놓으신 법도에 따를 것이다. 아무런 변경이 없을 것이다”고 밝혔다. 조선 개국 초 혼란기에 왕자의 난을 통해 집권한 태종 시대의 사회적 갈등까지 겹친 상황에서 과거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힐 수도 있는데 세종은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했다.
종신직인 교황이나 조선시대 왕도 계승 발전을 추구하는데 우리 대통령들은 5년의 짧은 임기에도 ‘새 술은 새 부대에’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듯하다. 전임자가 벌여 놓은 일은 일단 내려놓은 것을 미덕이라 생각한다. 여야가 바뀌었다면 그래도 이해할 만한데 같은 정당이 정권을 재창출했음에도 전 정부의 아이템은 대부분 사장돼 버린다.
녹색성장 정책이 대표적이다. 녹색성장은 세계적인 기후변화 이슈 속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축소와 신재생에너지 개발 촉진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찬밥 신세가 됐다. 이를 추진하던 녹색성장위원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축소됐다. 창조경제라는 새 정부의 구호에 묻혀 빛이 바랬다. 세계 각국이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녹색 성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갑자기 이 용어를 쓰는 것 자체를 금기시한다.
김대중정부에서 공단 조성에 남북이 합의해 노무현정부에서 문을 연 개성공단도 10년이 안 돼 사그라질 운명에 처했다. 북한이 먼저 문을 닫아걸었지만 새 정부도 개성공단의 재가동에 별 열의가 없어 보인다. 대신 박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조성을 제안한 후 정부 부처들은 온통 DMZ 개발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해외자원 개발이나 한식 세계화도 언제부턴가 천덕꾸러기가 됐다.
5년 단임 대통령 체제에서 임기 내 새로운 사업을 벌여 성과를 거두는 것은 쉽지 않다. 이명박정부는 4대강 정비를 무리하게 끝내려다 많은 후유증을 낳았다. 전 정부와 단절해 새 치적만 만들려하면 조급증에 빠질 수 있다. 지난 정부에서 시작한 일이라도 제대로 수확할 수 있게 하고, 다음 정부까지 이어질 사업을 추진해야 지속가능한 정책, 성공하는 정부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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