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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이해준> 휴가지 숙소는 마음에 드셨나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선 내국인 여행의 활성화가 우선돼야 하는데, 지금의 모텔을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여행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편안하고 저렴하며 정겨운 숙소로 바꾸어 간다면 여행문화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다.


간헐적으로 쏟아 붓는 게릴라성 폭우도 한여름 밤의 열기를 식히지 못했다. 클래지콰이의 세련되고 열정적인 공연이 끝나자 반대편 대형 무대에 미국의 록밴드 위저(Weezer)가 올라 능수능란한 장악 능력을 보이며 관객들을 들었다 놓았다. 지난주 말 경기 이천 지산리조트의 스키장에서 열린 지산록페스티벌. 필자 부부도 젊은이들 틈에 끼어 모처럼 몸을 신나게 흔들며 음악에 몸을 맡겼다. 세파에 시달리며 내면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어갔던 자유와 발산에 대한 욕구가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듯했다.

페스티벌은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다음날 일정을 감안해 자정을 넘어 인근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고 숙소를 찾았다. 가장 찾기 쉬운 숙소는 모텔이었다. 15㎞ 정도 떨어진 용인의 모텔로 향했다. 모텔은 깔끔했고, 객실의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으며, 특히 가격이 놀랄 정도로 저렴했다. 2인 1박에 3만5000원이었으니, 세계 최고의 가격경쟁력이라 할만 했다. 처음에 점찍었던 모텔은 만원이었고, 우리가 묵은 곳에도 손님이 많았다. 하지만 왠지 개운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치 은밀한 장소를 찾은 ‘불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1년여 전 필자가 가족과 함께 세계일주 여행을 할 때 숙소는 잠을 자고 피로를 푸는 곳이기도 했지만, 여행 정보를 얻고 사람을 만나는 곳이었다. 소통과 교류가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숙소에서는 이를 위해 카페나 휴게실 등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 놓고 매주 금요일 같이 특정한 날을 정해 여행자와 투숙객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도록 파티를 마련하는 곳도 있었다. 요즘 인기를 끄는 게스트하우스 가운데 이런 콘셉트로 운영되는 곳이 많지만, 전국의 유명 관광지나 풍광이 수려한 곳에 어김없이 들어선 모텔은 이와 반대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가 묵었던 모텔에도 투숙객들이 쉴 수 있는 라운지나 휴게실은 없이 오로지 객실로만 이뤄져 있었다. 입구의 카운터도 작은 구멍 하나만 뚫려 있어 요금과 키를 주고받도록 돼 있었다. 아침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차라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설도 없고 분위기도 아니어서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다. 외국의 숙소가 여행자들의 교류와 소통, 정보교환의 장소라면 한국의 많은 숙소는 이와 반대로 여행자들을 단절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여행의 핵심은 먹고, 자고, 사람과 문화를 만나는 것이며, 많은 일이 숙소에서 이뤄진다. 한국이 진정한 관광대국이 되려면 숙소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숙소가 부족해 중국의 단체관광객들을 이런 모텔에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전국에 산재한 엄청난 모텔과 오래된 숙박시설은 활용가치가 많은 관광 인프라다. 이를 개조하고 활용하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존의 모텔이나 낡은 여관을, 휴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여행자 및 가족 숙소로 바꾸도록 금융과 세제 및 홍보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선 내국인 여행의 활성화가 우선돼야 하는데, 지금의 모텔을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여행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편안하고 저렴하며 정겨운 숙소로 바꾸어 간다면 여행문화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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