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논쟁을 촉발하며 정국을 뒤흔들었던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결국 된서리를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제의 세법개정안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가벼워진 서민과 중산층의 지갑을 더 얇게 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과 어긋난다는 게 그 이유다. 정부 신뢰도 흠집을 무릅쓰고 이미 발표된 정책을 다시 거둬들이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이번 세제개편으로 인한 민심이 심상치 않았다는 의미다.
여야 정치권과 정부는 이번 파동이 주는 교훈을 똑똑히 새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증세없는 복지’가 얼마나 허구인지 여실히 드러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보편적이든, 선택적이든 복지를 늘리려면 그에 상응하는 재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조달하려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세금은 더 걷지 않고 약속한 복지 공약은 지키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이런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더 화가 난 것은 청와대와 경제 수뇌부의 후속 처신이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이 단 한 푼이라도 늘면 그게 증세다. 그러나 청와대와 경제팀은 증세가 아니라고 계속 우기기만 했다. 게다가 차분하게 국민들을 설득하기는커녕 ‘거위 깃털 뽑기’니, ‘그 정도는 감수하라’느니 하며 고압적 해명으로 일관하니 여론이 더 거칠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원점 검토’ 한마디에 정부 경제팀은 세제개편 수정안 손질에 여념이 없다. 그 핵심은 세 부담 증가 기준선을 어디까지 높일지에 모아지고 있다. 연봉 4000만원이든, 5000만원이든 기준선을 상향 조정하면 당장 들끓는 여론은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 처방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미 수차례 강조했지만 실마리는 ‘증세없는 복지’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 열쇠는 박 대통령이 쥐고 있는 셈이다. 재원 없이 공약한 복지를 모두 시행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선후를 정하고 뒤 순위 공약은 과감히 철회하는 용단이 필요하다. 그래도 꼭 지켜야 할 약속은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세금을 더 늘리는 것이 정도(正道)다. 질서있게 퇴로를 열어가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이다. 지난 대선만 해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뒷감당은 생각도 않고 복지 공약을 쏟아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정치권은 생생하게 목격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복지 수준과 증세 논의를 본격 시작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