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이 한국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할 의향이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서울 민사고법은 지난달 강제징용 피해가 여운택 씨 등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파기 환송심에서 각 1억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으며 현재 대법원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신일철주금은 일본 최대 철강회사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을 강제로 끌고 가 제대로 임금도 주지 않고 노역을 시킨 옛 일본제철의 후신이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기업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의 청구권도 소멸했다는 주장을 근거로 개인 피해보상을 외면해 왔다. 그런 점에서 신일철주금이 ‘배상 의향’은 그 의미가 크다.
물론 신일철주금의 이 같은 결정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당장 눈앞의 현실적 이해가 맞물려 마지못해 배상에 나선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실제 법원의 판결이 최종 확정됐는데도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현행법으로 한국 내 자산 압류 등 강제집행을 당할 수 있다. 더욱이 이 회사는 포스코에 5%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한국과의 거래도 활발하다. 법원 판결을 무시했다가는 사업적으로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성이 결여된 판단이라 하더라도 신일철주금이 실제 배상을 하게 된다면 상당한 의미와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비록 개별 기업의 차원이라 하더라도 개인 피해 배상의 물꼬가 트이게 됐다는 상징성이 있다. 이번 사안 말고도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이 똑같은 과정으로 진행 중이며, 이 밖에도 4~5건의 유사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별개의 새로운 소송도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 일제에 피해를 당했지만 정부가 개인청구권을 포기했던 중국에서도 보상 문제가 불거질 공산이 크다.
이런 파장을 신일철주금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또 일본 정부의 입장과도 정면배치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일단 배상을 하겠다고 결정한 용단은 평가할 만하다. 영국 정부가 1950년 자국 식민지였던 케냐에서 발생한 독립 봉기 진압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개별 보상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일제의 침략사를 외면하려는 일본 정치지도자들에게 신일철주금의 결정이 많은 자극이 되길 바란다. 한ㆍ일 두 나라는 이제 신뢰와 협력으로 새로운 동아시아 시대를 펼쳐갈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야 할 시점이다. 언제까지 과거사에 발목을 잡혀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