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데 아무렇게 뿌려도 잘 자라는 메밀은 중복 무렵 파종해 9월 중순이면 팝콘 같은 꽃을 터뜨린다. 메밀꽃은 수수하고 아련하지만 홀리는 데가 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븟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고 한 이효석의 절창 그대로다. 이즈음 봉평은 ‘메밀꽃 필 무렵’을 느끼려는 발길로 북적인다.
사실 봉평은 메밀꽃이 피지 않아도 메밀천지다. 메밀막국수집이 즐비하고 메밀과자, 메밀라면, 메밀전병 등 메밀이 들어간 먹거리가 넘쳐난다. 옛 봉평장터와 허생원과 함께 늙어간 당나귀, 물레방아도 곳곳에 서 있다. ‘이효석 문학관’이 생긴 뒤 나타난 현상이다. 어린 시절을 봉평에서 보낸 이효석은 작품의 진한 토속내와 달리 서구적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깔끔한 외모에 클래식 음악을 즐겼고 거실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해 놓는가 하면 온천과 카페 등을 다니며 이국적 정취를 즐긴 도시적 멋쟁이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