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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중산층
한국 사회에 20 대 80의 양극화 이슈를 제기하는 데 큰 역할은 한 책을 꼽으라면 단연 ‘세계화의 덫’을 들 수 있다. 저자인 독일의 저널리스트 한스 피터 마르틴과 하랄드 슈만은 여기에서 자본주의 세계화로 소수의 승리자가 부를 독식하고 다수가 패배자로 전락하는 실태를 파헤쳤다. 이들은 상위 20%가 부의 80%를 소유하고 중산층이 몰락하는 양극화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 책이 한국에 번역돼 소개된 것은 1997년이었다. 발간 직후에만 해도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그들이 주장했던 20 대 80의 양극화가 현실로 나타나자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정부에선 한국이 외환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한 모범국이라고 주장했지만, 시장개방과 규제완화, 민영화, 고용시장 유연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오히려 양극화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피터 마르틴과 슈만이 경고했듯이 한번 세계화의 덫에 빠진 나라가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힘들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이젠 20 대 80이 아니라 10 대 90, 5 대 95의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세제개편 논란과 전월세 대란을 거치면서 중산층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중산층이 두꺼워야 사회가 안정되고 행복이 증진될 수 있지만, 세계화의 덫과 신자유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으로선 최소한 중산층의 몰락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기 위해선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지난 대선 때 최대 이슈가 됐던 경제민주화 조치를 실천에 옮겨 경제구조를 점진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일 것이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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