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달인의 경지에 오른 류현진의 ‘가위 바위 보 게임’에 푹 빠졌다. 역시 모방의 귀재들이다. 양자회담을 제안하면, 3자회담, 5자회담으로 요리조리 절묘하게 피해간다.
80년 만의 폭염을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하는 류현진 덕분에 그럭저럭 견딘다. 위기를 맞아도 당황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춤을 추듯 야구공을 꽂아 넣는 류현진의 역투는 예술이다. 청량제가 따로 없다. 야구는 작전이 무궁무진하다고 하지만, 승부는 간단하다. 찰나의 순간 상대심리를 파고들어 정반대로 허점을 찌르는 게 관건이다. 야구해설가 하일성은 “야구는 가위ㆍ바위ㆍ보 게임”이라고 했다. 빠른 볼을 기다리면 느린 체인지업을, 몸쪽을 노리면 바깥쪽 공을 던지는 식이다. 류현진은 ‘가위바위보’의 천재다.
정치도 달인의 경지에 오른 류현진의 가위 바위 보 게임에 푹 빠졌다. 역시 모방의 귀재들이다. 양자회담을 제안하면, 3자회담, 5자회담으로 요리조리 절묘하게 피해간다. 국정원 국정조사도 야당의 어설픈 검사 노릇, 여당의 ‘증인 변호인’역할로 빈털터리가 됐다. 댓글의 진상규명도, 국정원 개혁도 물 건너가고 여야는 잔뜩 독기만 올랐다. 승점을 올리지 못한 여야는 다시 전ㆍ월세대책에서 겨룬다. 정부와 여당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분양가상한제 탄력 적용, 수직증축 리모델링 허용, 취득세 영구인하를 추진 중이다. 대대적인 규제완화다. 야당은 “쓸 만한 해법이 하나도 없다”면서 전ㆍ월세 상한제를 주장한다. 전ㆍ월세대책이 아예 무산되거나, 누더기ㆍ짜깁기 법안 둘 중 하나다.
최경환(새누리당) 전병헌(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동시에 “취임 100일이 1000일 같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3개월 동안 3년치 싸움을 벌였다. 되는 일이 없는 게 상대의 책임이다. 다른 주장에 귀를 닫는 심각한 난청(難聽), ‘내 탓이요’ 김수한 추기경을 기억에서 지워버린 몰염치한 망각(忘却)의 시대다. 정치의 실종과 정치의 무용을 절감한다.
정쟁의 꼭짓점에 있는 사람들은 민생을 보살피고 대한민국의 미래좌표를 설정해야 하는 공동 선장이다. 남 탓을 하면 직무유기다. 대통령까지 정쟁의 중심에 들어오면 싸움판이 커진다. 대통령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잘못하는 성가대는 없고, 잘못하는 지휘자만 있다”고 어느 유명한 음악가는 말했다. ‘잘못한 흔적’은 크게 남는 위태로운 자리, 국정의 거의 모든 영역에 개입하면서도 결정력은 갖지 못한 권력이 민주주의 시대의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국정난맥의 최종 정치적 책임은 대통령이 지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했을 것이다.
25일로 박근혜정부 출범 6개월을 맞는다.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대북정책으로 박 대통령은 강단 있는 카리스마를 충분히 보여줬다. 여성대통령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반대편을 감싸 안는 리더십을 기대한다. 첫 단추는 땡볕에서 바짝 독이 오른 채 서성대는 야당과의 대화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 사회에 딱 어울리는 보고서를 냈다. “우리나라는 배고픔을 잊을 만한 때쯤 분노의 사회가 됐고, 첨예한 갈등과 분노는 정치권이 키운다.” 공감 100% 진단이다. 보고서는 또 사회갈등에서 비롯된 비용이 연간 246조원에 달하는데, 갈등을 10%만 낮춰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5.4% 높아진다고 추산했다. 액면대로 추론하면 증세논란도, 창조경제도, 고용률 70%도 고민할 필요도 없이 갈등해소를 국정과제 1순위로 올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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