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 통일기반을 구축하려는 정책’이라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추진과제로는 ‘신뢰형성을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 ‘인도적 문제의 지속적 해결추구’ ‘상시적 대화채널 구축과 합의정신 실천’ ‘호혜적 교류ㆍ협력의 확대 심화’ ‘비전 코리아 프로젝트 추진’ 등이 제시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구상을 묶은 것으로 다소 무미건조하지만 냉철할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가 충분히 감지된다. 두드러진 것은 ‘신뢰’에 대한 가치설정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21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는 불신이 매우 깊은 상태”라며 “작은 신뢰에서 출발해 더디게 가더라도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감으로써 큰 신뢰를 쌓도록 하겠다”고 했다. 신뢰 없이는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더 눈여겨 볼 것은 “대북정책은 남북관계 상황에 맞춰 진화하는 정책”이라는 대목이다. 과거 정부의 대북 정책 중 장단점을 교훈 삼되 지나친 강ㆍ온 양극 쏠림현상은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무리하다 할 정도로 유화적이었다면, 이명박정부는 천안함 폭침에다 연평도 포격도발 등 거침없는 북한의 도발책동으로 극도의 강경일변도였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한계점을 극복하자는 것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설명이다.
이번에 새롭게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 문제를 추진과제에 포함시킨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는 판단이다. 북한이 대화국면을 틈타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모처럼 조성된 해빙 무드에 긍정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류 장관도 “금강산 재개 조건은 복잡하지 않다”고 말해 경우에 따라선 조기에 성사될 수 있음을 내비쳤지만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와도 직결된 문제인 만큼 보다 정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확고한 신변안전 보장 및 재발방지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신뢰 프로세스는 한마디로 북한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맞춤형으로 적극 대처하되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재개에 이어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고 금강산이 다시 열린다 해서 신뢰구축이 완성됐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 워낙 남북관계란 변화무쌍하고 불가측성이 도사리고 있는 때문이다. 속도보다는 신뢰가 우선이라는 정부의 판단에 크게 공감하는 바다. 결국 신뢰가 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