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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휴가, 너무 팍팍하지 않은가
이제 우리도 휴가를 좀 넉넉하게 쓸 때가 됐다. 적어도 2주일, 보름 정도는 돼야 제대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상에 복귀할 때 재충전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게 호사라면 그런 정도는 누릴 자격이 있다.


아무리 오뉴월 염천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입추에 말복이 지나도 폭염의 맹위는 수그러들 줄 모르니 탄식처럼 나오는 말이다. 그래도 이런 무더위를 버티게 해 주는 힘은 휴가다. 직장인이든 자영업자든 잠시 하던 일을 접어놓고 산으로 바다로 휑하니 한바퀴 돌고 나면 생활에 활력이 돌고 아이들 입막음은 할 수 있다.

이왕 마음먹은 휴가라면 조금은 더 여유로웠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 휴가 문화는 너무 팍팍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하면서도 막상 떠나려면 이래저래 눈치가 보인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나 휴가라는 게 짧게는 사흘, 기껏 길어야 일주일이다. 일반 근로자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를 다 합하면 공휴일을 끼고 한 달도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간 큰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일주일이라도 맘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아직은 이게 우리 사회 휴가 문화의 현주소다.

휴가일이 너무 짧고 기간이 집중되다보니 어딜 한번 다녀오려 해도 그야말로 전쟁이다. 숙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고, 오가는 길은 교통지옥이다. 본의 아니게 바가지라도 둘러쓰게 되면 피로도는 절정이다. 스트레스를 풀고 오는 게 아니라 더 안고 돌아오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휴가에 지친 심신을 달랠 휴가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게다가 휴가의 방식 또한 너무 정형화돼 있다. 어렵게 휴가지에 도착해도 풍광을 즐기며 느긋한 휴식을 취할 새가 없다. 필사적으로 인파를 헤치고 명소를 찾아 인증샷을 남겨야 하고, 맛도 없는 유명 맛집 앞에서 줄도 서야 한다. 계곡이든, 바다든 아이들은 물에 몸을 담가야 휴가를 했다고 하니 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게 2, 3일 정신없이 지내다 돌아오는 게 대체적인 휴가의 틀이다. 조카들과 함께 강원도 용평과 동해안을 다녀 온 내 짧은 휴가 여행이 딱 그랬다.

삶의 여유를 찾고 마음을 힐링하기는커녕 휴가가 고행길이 된 건 시간이 너무 빠듯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좀 더 넉넉한 휴가를 쓸 때도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실질구매력지수로 계산한 우리 근로자의 연간 평균임금은 3만5000달러가량으로 독일 프랑스보다는 못하지만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 수준은 된다. 휴가를 좀 느긋하게 즐겨도 탓할 일은 못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2주일, 보름은 돼야 제대로 휴식을 취하고 일상에 복귀할 때 재충전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귀화 한국인인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의 지론이기도 하다. 그럴 경우 경제ㆍ사회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한다면 우리 사회의 뿌리는 한층 견고해질 것이다. 경제적 파장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힘이 된다. 지방자치단체들이 휴가객 유치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쏟아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휴가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개인적 노력이 선행된다면 보름 휴가를 못할 게 없다. 하지만 개인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솔선해 이런 사회적 분위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결코 호사(豪奢)라 할 수는 없다. 설령 호사라 하더라도 누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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